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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에 출제 된 문학 작품 목록 (현대시, 수필, 현대소설, 고전소설, 가정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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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밀며

장석남

 

 

배를 민다
배를 밀어보는 것은 아주 드문 경험
희번덕이는 잔잔한 가을 바닷물 위에
배를 밀어넣고는
온몸이 아주 추락하지 않을 순간의 한 허공에서
밀던 힘을 한껏 더해 밀어주고는 
아슬아슬히 배에서 떨어진 손, 순간 환해진 손을 
허공으로부터 거둔다

사랑은 참 부드럽게도 떠나지
뵈지도 않는 길을 부드럽게도

배를 한껏 세게 밀어내듯이 슬픔도 
그렇게 밀어내는 것이지

배가 나가고 남은 빈 물 위의 흉터
잠시 머물다 가라앉고

그런데 오, 내 안으로 들어오는 배여
아무 소리 없이 밀려들어오는 배여

 

 

혼자 가는 먼 집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 ,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 ,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 ,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 ,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 ,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 , 그러나 킥킥 당신


*치병 : 병을 다스림
**환후: 병을 정중하게 이르는 말

 

 

 

 

 

이젠 되도록 편지 안 드리겠습니다

이광호

 

 

그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만큼 표현의 욕구로 흘러 넘치는 것도 없다.   무언가를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시간들이 편지를 쓰게 한다.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어렵고 진정하며 운명적인가를 설명하고 싶었다.  편지는 사람을 설득하거나 매혹시키는 방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사랑의 편지는 마지막 순간,  도구적이지 못하다.  세상의 모든 글쓰기가 최후의 순간에는 처음에 품었던 소소한 의도를 배반 하는 것처럼.  그  통제할  수  없는 익명의 욕구가 그 편지의 현실적인 목표를 잊어버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모든 사랑의 편지에는 아무 전언도 들어 있지 않다.


거기에는 결정적인 정보나 주장이 들어 있지 않다.   다만 내 고백을 누군가가 들어준다는 충만한 느낌.   희미한 불빛 아래서 스스로 옷을 벗어야 할 때처럼,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 따위. 고백이란 결국  2인칭을  경유하여  1인칭으로  돌아온다.   그의 들끓는 고백의 언어들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왔다.   한동안 그는,  사랑하는 ㅇㅇ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를 자주 썼다.  그녀는 그의 편지를 사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편지 속의 그’를 그녀는 사랑했다.   편지 속에는 그가 찾아낸 자신의  또   다른  영혼이 있었다.   또 다른 영혼의 ‘그’는 순수한 열정과 끝 모를 동경과 깊은 이해심을 가진 존재였다.  그도 역시 그녀처럼 자신의 편지 속 1인칭 화자에게 깊이 매료되었다.   하지만 너무 뻔해서 가혹 했던 지리멸렬한 시간들 속에서 그는 편지 속의 1인칭 주체를 잊어버렸다. 


편지조차 쓸 수 없는 시간들이 무심하게 지나가고, 다시 편지를 쓰고 싶었을 때,  그는 이미 ‘편지 속의 그’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편지 속의 그’를 연기하는 것이 부끄러웠고,  자신의 비루함을  뼛속  깊이  실감했다.   그는 ‘사랑하는 ○○에게’라는 편지를 쓰고 싶어 하는 자신 속의 어떤 늙지 않는 영혼을,   그 순수한 인격을 외면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듣기를 바라는 모든 고백이란,  위선이 아니면 위악이다.

 

 

 

배꼽을 주제로 한 변주곡

이청준

 

불편스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허원은 그렇게 스스로 주의하고 고통을 감내해 냈기 때문에 자신의 비밀을 남 앞에 감쪽같이 숨겨 나갈 수 있었다. 아무도 그의 비밀을 눈치챈 사람이 없었다. 비밀이 탄로 나지 않는 한 그의 일상 생활은 더 이상 불편을 겪을 필요도 없었다. 인체 생리나 해부학 서적 같은 걸 뒤져 봐도 성인의 배꼽은 거의 아무런 기능도 수행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적어도 그의 외모나 바깥 생활은 정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 점만이라도 무척 다행이었다. 그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깟 놈의 배꼽, 안 가지고 있음 어때. 그쯤 체념을 하고 될 수 있으면 배꼽에 관한 일들을 잊어버리려 했다. 자신으로부터 배꼽이 사라져 버린 사실을, 그리고 그 때문에 생긴 모든 불편을 잊고, 그 배꼽 없는 생활에 스스로 익숙해져 버리기를 바라 마지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았다. 아무리 일상생활에선 드러나게 불편한 점이 없다 해도 그는 역시 배꼽이 없는 자신에 대해 좀처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그는 자꾸만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어지곤 했다. 있느니라 여기고 지낼 때는 그처럼 무심스럽던 일이 그런 식으로 한번 의식의 끈을 건드려 오자 허원의 상념은 잠시도 그 잃어 버린 배꼽에서 떠나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마침내 회사 출근마저 단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신통하게도 늦잠 버릇이 깨끗이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는 눈만 뜨면 사라져 없어진 배꼽 때문에 기분이 허전했고, 그러면 그 허망감을 쫓기 위해 배꼽에 관한 끝없는 상념들을 쌓기 시작했다.

 

(중략)

그리하여 배꼽에 관한 허원의 지식과 사념은 자꾸 더 심오하고 추상적인 것이 되어 갔다. 그에게는 어느덧 그 나름의 독특한 배꼽론 같은 것이 윤곽을 지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허원은 더욱더 허전해지고, 아무 곳에도 발이 닿아 있는 것 같지 않고, 혼자서 외롭게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그는 또 거듭 그 허망감을 쫓기 위해 자신의 배꼽론을 완벽하게 발전시켜 나갔다. 마치 그렇게 하여 그는 자신의 사념 속에서 잃어버린 배꼽을 되찾아내고, 그것으로 그 실물을 대신해 어떤 식으로든 자신과 세상 간에 큰 불편이 없도록 화해시키고 그것으로 그 난감스런 허망감을 채우려는 듯이. 그의 배꼽론은 가령 이런 식으로까지 발전되어 있었다. ― 우리는 누구나 배꼽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들의 어머니로부터 탯줄이 끊어지는 순간 이 우주의 한 단자(單子)로서 고독하게 존재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히 그 탯줄의 기억을 잊지 않는다. 우리 영혼은 언제까지나 그 어머니의 탯줄과 이어지려 하고, 또다시 그 어머니의 어머니의 탯줄과 이어져 나가면서 우리 존재를 설명하고 근원을 밝혀 나가며, 마침내는 마지막 어머니의 탯줄이 이어지는 우리들의 우주와 만나게 된다…… 우리의 배꼽은 우리가 그 마지막 우주와 만나고자 하는 향수의 표상이며 가능성의 상징이며 존재의 비밀로 나아가는 형이상학이다. 그 비밀의 문이다…… 그는 어느덧 배꼽에 대해 당당한 일가견을 이룬 배꼽 전문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어느 해 여름이었다. 하니까 그것은 허원이 자신의 배꼽을 잃어버리고 나서 불편하기 그지없는 세 번째의 여름을 맞고 있을 때였다. 그는 물론 배꼽을 잃어버린 자신에 대해 아직도 완전힌 익숙해지질 못하고 있었다. 그의 사념 역시 언제나 그 눈에 보이지 않는 배꼽에 매달려 거기에서밖에는 영영 더 이상 자유로워질 수가 없었다. 그 대신 허원은 이제 그 자신의 배꼽론에 대해선 매우 확고한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그럴 즈음이었다. 허원은 문득 세상 사람들이 수상쩍어지기 시작했다. 어느 때부턴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세상 사람들 역시 무슨 이유에선지 이 인간 장기의 한 조그만 흔적에 대해 심상찮은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배꼽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역시 기왕부터 있어 온 것을 여태까지 서로 모르고 지내 오다가 비로소 어떤 기미를 알아차리게 된 것인지, 혹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런 관심을 내보이게 할 만한 무슨 우연찮은 계기가 마련되었는지는 확실치가 않았다. 그리고 무엇 때문에 사람들에게서 그런 관심이 시작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쨌든 사실이었다. 주의를 기울여 보니 관심의 정도도 여간이 아니었다. 한두 사람, 한두 곳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미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듯 배꼽 이야기가 일반화의 기미를 엿보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이제 그걸 신호로 아무 흉허물 없이 터놓고 지껄이거나 신문, 잡지 같은 데서 진지하게 논의의 대상을 삼기도 하였다. 배꼽에 관한 논의가 그렇듯 갑자기 시중 일반에까지 성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묘한 현상이었다.

 

 

 

정을선전

작자미상

 

[앞부분의 줄거리] 승상 정을선이 출정한 사이 정렬부인의 모략으로 충렬부인이 옥에 갇히자 시비 금섬이 충렬부인을 피신시키고 자진한다. 옥에서 얼굴이 상한 금섬의 시신이 발견되자 왕비는 월매를 문초한다. 전장에서 정을선은 호첩이 전한 편지를 읽는다.


원수가 대경하여 호첩을 불러 연고를 물으시고 인하여 중군장에게 분부하시되 ‘나는 집에 변이 있어 먼저 가니 중군장은 차후에 인솔 하여 오라.’ 하고 밤낮 삼 일 만에 득달하니 이때에 왕비의 시비 월매가 종시 토설치 아니하매 매를 많이 맞고 여쭈오되
“어서 바삐 죽이시면 금섬의 뒤를 쫓아가겠나이다.”

한데 왕비 크게 노하여 목을 베라 할 즈음에 이때 승상이 필마로 달려오다가 월매 죽이려 하는 거동을 보고 급히 소리를 지르며 말에서 내려 이를 구호하매 문왈 
“충렬부인은 어디 계시냐?”
월매 인사를 모르다가 승상을 보고 방성통곡 왈 
“승상은 바삐 충렬부인을 살리소서.”
한데 승상이 급히 문왈 
“어디 계시냐?”
한데 월매 울며 왈 
“소인이 걷지 못하오니 어찌 가오리까?”
한데 급히 종을 불러 월매를 업히고 구덩이를 찾아가 보니 부인이 아기를 안고 있거늘 아기는 잠을 깊이 들었는지라. 승상이 통곡 왈 
“부인은 눈을 떠 나를 보소서.”
한데 부인이 눈을 떠 보니 승상이 왔거늘 정신 아득하여 인사를 모르다가 겨우 인사를 차려 왈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구년지수의 해 같고 칠년대한의 빗발같이 바라더니 지금 구덩이에서 만날 줄 알았으리까. 승상은 나의  을 씻겨 주소서.”
하며 인사를 모르는지라. 그 참혹한 형상을 어디에 비하리오.  슬픔에 매우 야위어 뼈가 드러나게 되었는지라. 승상이 아기를 안아 월매를 주고 부인을 구한 후에 자리를 마련하여 옥석을 구별할새, 왕비전에 뵈온대 왕비 못내 반기시며 사연을 낱낱이 이르시되 승상 왈
“이 일은 소자가 이미 아는 바이오니 염려 마옵소서.”
하며 왈
“처음에 그놈이 충렬부인 방에 간 줄 어찌 알으셨나이까?” 왕비 왈 
“사촌 오라비가 이르기로 알았노라.”
하신대 승상이 복록을 찾는데 벌써 제 죄를 알고 후원에 올라가 이미 죽었는지라.  하릴없어 옥졸을 잡아들여 엄히 문왈 
“너희는 어찌 충렬부인 아닌 줄 알았느냐?  바로 아뢰라.”
하신대 옥졸이 급히 여쭈오되
“얼굴이 상하여 아모란 줄 모르오나 손길이 곱지 못하오매 소인 등 소견에 충렬부인이 천하일색이라 하더니 손이 곱지 아니하더라 하올 제 정렬부인의 시비 금연이 이를 듣고 묻기에 자세히 이르고 부디 다른 데 가서 이 말 말라 당부하옵더니, 필연 금연의 입을 통해 발설이 된가 하나이다.”
한데 승상이 금연을 잡아들여 문왈 
“이 말을 듣고 네게 국문하니 바른대로 고하라.”
하는 소리가 벼락이 꼭두에 임한 듯하고 궁궐이 뒤집히는 듯 하더라.  이때에 정렬부인이 승상의 호통 소리를 듣고 똥을 한 무더기를 싸고 자빠졌는지라.  금연이 하릴없어 바로 아뢰나니라 하고 정렬부인 하던 말이며 제가 남복을 하고 충렬부인 침소로 들어간 말이며 이불 속에 누웠다가 달아난 말이며 정렬부인이 앓는 체하고 누웠사오매 충렬부인이 약으로 구병하며 곁에 있으시매 침소로 가라 강권하여 침소로 마지못하여 가시매 복록이 왕비께 참소하던 연유를 낱낱이 아뢴대 왕비 곁에 있다가 앙천통곡하시며 왈
“내 밝지 못하여 악녀의 꾀에 빠져 충렬부인을 죽이려 하였나니 무슨 면목으로 충렬부인을 보리오.”

하시며 자결코자 하거늘 승상이 붙들고 울며 왈 
“모친이 너무 과도히 하시면 소자가 먼저 죽으려 하나이다.” 왕비 금침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더라.  승상이 정렬부인을 
결박하여 땅에 꿇리고 크게 노하여 왈
“너는 무엇이 부족하여 충렬부인을 해코자 하느냐.  어찌 일시를 살리리오.  내 임의로는 죽이고 싶으나 황상께 아뢰고 죽게 하리라.”
하고 상소하니 그 글에 하였으되
“대사마 대도독 대원수 정을선은 돈수백배하고 아뢰나니 신이 서융을 쳐 사로잡고,  백성을 진무하고 돌아오려 할 때,  집에서 급한 소식을 듣고 군사를 중군장에게 맡기옵고 필마로 올라와 본즉,  정렬부인이 이러이러한 변을 일으켰사오니 세상에 이러하온 일이 있사오닛가.”
하고 금연이 흉계를 꾸민 일과 월매가 당하던 고초를 낱낱이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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