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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국어 2025 기출 문학 고전소설 정을선전 원작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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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선전(鄭乙善傳)

작자미상
 
 
대명(大明) 가정 연간(嘉靖年間)에 해동 조선국 경상좌도 계림부 자산촌에 일위(一位) 재상(宰相)이 있으되, 성은 정이요, 이름은 진희라.
 
잠영거족(簪纓巨族)으로 소년등과(少年登科)하여 벼슬이 상국(相國)에 이르러 명망(名望)이 조야(朝野)에 진동하더니, 시세(時勢)변천(變遷)함을 인하여 법강이 해이하고 정령(政令)이 문란하여 군자의 당(黨)은 자연 물러가고 소인의 당이 점점 나아옴으로 풍진(風塵) 환로(宦路)에 뜻이 없는지라.
 
표(表)을 닦아 천폐(天陛)에 올려 벼슬을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구름 속에 밭 갈기와 달 아래 고기 낚기를 일삼으매, 말년(末年)에 가산(家山)은 섬부(贍富)하나, 다만 슬하(膝下)에 일점혈육(一點血肉)이 없기로 매양 슬퍼하더니, 일일(一日)은 부인 양씨와 더불어 울적한 비회(悲懷)를 풀고자 하여 후원(後園) 동산에 올라가 일변(一邊) 풍경도 완상(玩賞)하며 일변 산보로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인간 삼생사(三生事)를 담화할 새, 이때는 마침 춘삼월(春三月) 망간(望間)이라.
 
동산(東山) 서원(西園)에 백화(百花)는 만발하여 불긋불긋하고, 전천후계(前川後溪)의 양류(楊柳)는 무성하여 푸릇푸릇하여 원근(遠近) 산천(山川)을 단청(丹靑)하였는데, 화간접무는 분분설(花間蝶舞紛紛雪)이요, 유상앵비는 편편금(柳上鶯飛片片金)이며 비금주수(飛禽走獸)는 춘흥(春興)을 못 이기여 이리저리 쌍쌍래(雙雙來)라.
 
물색(物色)이 정여차(正與此)하매 즐거운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되면 환환희희(歡歡喜喜) 흥치(興致) 일층(一層) 도도(陶陶)하겠고, 슬픈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되면 우우탄탄(吁吁嘆嘆)으로 수회(愁懷) 일층 증가(增加)할러라.
 
이러므로 승상이 부인을 대하여 추연(惆然) 탄왈(嘆曰),
 
“우리 연광(年光)이 반이 넘도록 일점혈육이 없으매, 우리에게 이르러 만년(萬年) 향화(香火)를 끊게 되니 수원수구(誰怨誰咎)하리오. 사후(死後) 백골이라도 조선(祖先)에큰 죄인을 면치 못하리로다. 이러므로 이같은화조월석(花朝月夕)을 당하면 더욱 비회를 억제치 못하겠도다.”
 
하거늘, 부인이 슬픔을 못 이기어 여쭈오되,
 
“우리 문호(門戶)에 무자(無子)함은 다 첩(妾)의 죄악이라. 오형지속(五刑之屬)에 무후막대(無後莫代)라 하오니 마땅히 그 죄 만 번죽음 직하오되, 도리어 상공(上公)의 넓으신 은덕(恩德)을 입사와 존문(尊門)에 의탁(依託)하여 영귀(榮貴)함을 받으오니 그 은혜 백골난망(白骨難忘)이로소이다. 다른 명문대가(名門大家)의 요조숙녀(窈窕淑女)을 널리 구하시어 취처(娶妻)하여 귀자(貴子)를 보시면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면할까 하나이다.”
 
하니, 승상이 미소 답왈(答曰),
 
“부인에게 없는 자식이 타인에게 취처한들 어찌 생남(生男)하오리까. 이는 다 나의 팔자이오니 부인은 안심하옵소서.”
 
하며 시동(侍童)을 사용하여 주효(酒肴)을 내와, 승상이 부인으로 더불어 권하거니 마시거니 일배일배 우일배(一杯一杯 又一杯)로서로 위로하며 마신 후에 승상과 부인이 취흥(醉興)으로 밝은 달을 띄우고 돌아와 각기 침소로 돌아오더라.
 
이날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여 전전반측(輾轉反側) 적막한 빈방 안에 올련(兀然) 독좌(獨坐)하여 수회(愁懷)를 등촉(燈燭)에 부치어 이리저리 곰곰 생각하다가,
 
‘옛말에 하였으되, 정성이 지극하면 지성(至誠)이 감천(感天)이라 하였으니, 명산대천(名山大川)에 가서 지성으로 정성 드리어 득남발원(得男發願)이나 하여 보면, 천지신명(天地神明)이 혹시 감동하사 일개(一介) 동자(童子)를 점지하여 후사(後嗣)나 이어 조선(祖先)에죄를 면할까.’
 
하여, 날새기를 기다려 즉시 행장(行裝)을수습하여 남방으로 향하더라.
 
 
떠난 지 여러 날 만에 봉래산(蓬萊山)을 당도하여 수일을 한양(閑養) 후에 수십 명 역정(驛丁)을 사용하여 제단(祭壇)을 건축하고 목욕재계하여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백일기도를마치고 본제(本第)로 돌아오니, 이날 밤에 부인이 자연 곤뇌(困惱)하여 안석(案席)에 의지하여 잠깐 졸더니 비몽사몽간(非夢似夢間)에 하늘에서 홍의(紅衣) 동자(童子) 내려와 부인 앞에 끓어 재배(再拜) 왈,
 
“소자(小子)는 남해 용자(龍子)옵더니, 상제(上帝)께 득죄(得罪)하여 진세(塵世)에 내치시니 갈 바를 알지 못하여 망극하옵던 차에, 봉래산 선관(仙官)이 귀댁으로 지시(指示)하옵기로 왔사오니, 부인은 어여삐 보옵소서.”
 
하며, 품속으로 들거늘, 양씨 놀라 깨어 보니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몽사(夢事)가 기이하기로 즉시 상공을 청하여 몽사를 여쭈오되, 승상이 청파(聽罷)에 만심대희(滿心大喜)하여 내념(內念)에 귀자(貴子)를 둘까 암축(暗祝)하더라.
 
과연 그달부터 태기(胎氣) 있어 십이 삭(朔)이 되매 일일은 오색(五色) 채운(彩雲)이 집을 두르며 향기 만실(滿室)일새, 부인이 좋은징조 있음을 보고 만심(滿心) 환희(歡喜)하여옥로(玉爐)에 향을 사르며 소학(小學) 내직(內職) 편을 열람(閱覽)하다가 혼미(昏迷) 중, 일개 옥동(玉童)을 낳으니 용모 장대하며 표범이 머리와 용의 얼굴이요, 곰의 등이며 잔나비 팔이요, 이리의 허리며 겸하여 소리가 뇌성(雷聲) 같으매 사람이 이목(耳目)을 놀래는지라.
 
승상이 대희(大喜)하여 명명(命名) 왈(曰)을선이라 하고, 자(字)를 용부라 하다.
 
 
을선이 점점 자라매 총명(聰明)이 과인(過人)하여 무경칠서(武經七書)를 무불통지(無不通知)하며 동서양 제가서(諸家書)를 열람아니한 서책이 없는지라.
 
세월이 유수(流水) 같아서 춘광(春光)이 십에 이르매 지혜는 만인(萬人)에 지내고 재조는 천인(千人)에 지내며, 용맹은 절대(絶代)하고 겸하여 충효가 특이하니 동서양에 공전절후(空前絶後)한 인물이라.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더니 자고급금(自古及今)하여 조선 동천(東天)에 특별한 영걸(英傑)이 배출하니, 금수강산(錦繡江山)일시 분명하더라.
 
 
각설(却說), 이때 익주(益州) 땅에 일위(一位) 재상이 있으되, 성(姓)은 류요, 명(名)은 한경이라.
 
몸이 일찍 현달(顯達)하여 벼슬이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이르러 충의 강직하여 명망이조야(朝野)에 진동하더니 소인의 참소(讒訴)를 만나 삭탈관직(削奪官職)하여 내치심을 당하매 고향에 돌아와, 농부 어옹(漁翁)이되어 세월을 추월(秋月) 춘풍(春風)으로 보내며 다만 한가한 사람이 되었으되, 일찍 아들이없고 일녀(一女)뿐이니, 이름은 추련(秋蓮)이라 하더라.
 
난 지 삼 일만에 부인 최씨 산후병으로 세상을 영결(永訣)하더라. 즉시 유모를 정하여 지성으로 양육하여 연기(年紀) 십오 세에 이르러시서(詩書)를 통달하여 지성으로 부친을 섬기며, 겸하여 설부화용(雪膚花容)이 무쌍(無雙)하고 용모 자색이 태임(太妊) 태사(太姒)에 비하겠고, 덕행은 동서고금에 절대하더라. 류상서 애지중지(愛之重之)하기를 장중보옥(掌中寶玉)같이 사랑하더라.
 
상서 환거(鰥居)할 수 없어 노씨라 하는여자를 재취(再娶)하여 일남일녀를 낳은지라. 노씨 본래 마음이 어질지 못하여 추련을 항상해하고자 하더라.
 
상서 소시(少時)로부터 정승상과 단금(斷金)의 붕우(朋友)라. 황상(皇上)의 내치심을당함에 고향으로 돌아와 정승상을 항시(恒時)로 사모하더니, 마침 상서에 회갑이라 잔치를배설(排設)하고 정승상과 누년(累年) 적조(積阻)하던 회포를 설화(說話)코자 청래(請來)하였는지라.
 
정승상이 멀고 먼 도로를 혐의(嫌疑)치 않고 즉시 을선을 데리고 발정(發程)하여 익주로 행하여 가더라. 이때 유 상서가 정 승상을만나 적년(積年)에 그리던 깊은 정회를 담화할 새, 을선을 명하여 상서께 뵈오니 상서 또한노씨 몸에서 낳은 자식을 불러 승상께 뵈옵게한 후, 승상과 상서 서로 즐거워함이 비할 데없더라.
 
여러 날 즐거워 지낼 새, 일일은 을선이 동산에 올라 풍경을 두루 구경하다가 한편을 바라본즉 후원에 있는 양류(楊柳) 가지 흔들흔들하거늘, 을선이 자세히 살펴보니 한 낭자가 여러시비(侍婢)를 데리고 추천(鞦韆)하는지라.
 
잠깐 은신(隱身)하여 본즉 구름 같은 머리채는 허리 아래 너풀너풀하고, 오이씨 같은 발길은 반공중(半空中)에 흩날려 섬섬옥수(纖纖玉手)로 추천 줄을 휘어잡고, 앞줄을 벌려 뒤가늘며, 뒷줄을 벌려 앞이 늘고, 한 번 굴러 두번 굴러 반공중에 솟아올라 벽련화(碧蓮花)를두 발길로 툭툭 차 던지며 양류 가지를 휘어잡는 모양은 평생 보던 바가 처음이라.
 
한번 보매 심신(心身)이 산란(散亂)하여 점점 나가볼 새, 시비 등이 소저(小姐)께 대하여 말하되,
 
“경선(京城) 댁에서 사실 때에 국내(國內) 자색(姿色)을 많이 보았으되, 우리 소저 같은인물은 보지 못하였더니, 외방(外房)에 오신 정공자(公子)의 인물이 소저와 차등 없는 듯하오니, 짐짓 남중일색(男中一色)인가 하외다.”
 
하니, 소저 웃고 왈,
 
“내 인물이 무엇이 곱다 하리오.”
 
하더라.
 
이윽고 추천 유희(遊戲)를 다하고 들어가거늘 을선이 이 거동을 완상(玩賞)하고 정신이산란하여 날이 저물도록 그곳에서 배회하다가외당으로 들어오더라.
 
낭자의 고운 태도가 눈에 암암(暗暗)하고청아(淸雅)한 음성은 귀에 쟁쟁(錚錚)하여심혼(心魂)이 흩어져 장부(丈夫)의 간장을 다녹이는 듯, 적막한 방 안에 등촉(燈燭)으로 벗을 삼아 홀로 앉아 생각하니,
 
‘세상 만물이 다 짝이 있는데 나 혼자 짝이없어 항상 근심하더니, 우연히 류상서 집 후원에 이르렀다가 백옥 같은 사람에 마음을 놀래는가.’
 
이윽히 생각하며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못하여 여취여광(如醉如狂)하여 눈에 보이는것이 전혀 다 류소저 모양이라. 이러므로 불과오륙 일 지간에 인형(人形)이 초췌(憔悴)하고그렇게 흔하던 잠도 없더라.
 
이튿날 승상께옵서 길을 떠나 집으로 가실새, 을선이 마지못하여 부친을 뫼시고 돌아왔으나만사무심(萬事無心)하여 학업을 전폐하고 생각하느니 류소저로다.
 
일념(一念)에 병이 되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지라. 승상 부부가 민망하여 온갖 약을 쓴들조금이라도 차도가 있은 손가. 백약이 무효하여병세 점점 침중(沈重)하는지라. 그 모친이 약을 달이며 을선의 곁에 앉았더니 을선이 병중군말로,
 
“류소저 집 후원에서 보던 낭자 여기 왔느냐?”
 
무수한 헛소리를 크게 부르거늘, 그 모친이을선의 섬어(譫語)하는 거동을 보고 놀라며승상을 청하여 이 연유를 여쭈오되,
 
“을선이 기(其) 병중에 ○○○○○○○ 하옵디다.”
 
하거늘, 승상이 청파에 괴상히 여기어 을선을깨워 묻되,
 
“네 병세를 살펴보니, 우리 말년에 너를 낳아장중보옥(掌中寶玉) 같이 사랑하더니, 홀연 득병하여 이같이 위중하니, 네가 무슨 연고 있는듯 싶으니, 사실을 은휘(隱諱)치 말고 심중소회(素懷)를 자세히 설명하라.”
 
을선이 민면(黽勉)한 말로 여쭈오되,
 
“부친께옵서 이같이 묻자오시니 어찌 기망(欺妄)하오리까. 과년(過年) 전일 류상서 집에갔을 때에, 후원 동산에서 추천하는 낭자를 보고 심신이 아득하여 일념에 병이 되어 부모 안전(案前)에 이같이 불효를 끼치오니 죄사무석(罪死無惜)이로소이다.”

승상이 청파에,
 
“네 병이 진실로 그러할진대 그런 말을 왜 진작 아니 하였단 말이냐? 익주 갔을 때에 류상서의 아들을 보매 그 상모(相貌)가 아름답지못하기로 그저 돌아왔더니, 네 진실로 그러할진대 매파(媒婆)를 보내어 유 상서께 통혼(通婚)하면 응당 희소식이 있을 듯하니 안심하라.”
 
하고, 매파를 즉시 보내어 통혼하였는지라.
 
류상서는 을선을 보내고 사모불망(思慕不忘)하던 차에 승상의 보내신 매파의 청혼함을듣고 못내 기뻐하여 즉시 허락하며 택일(擇日)까지 하여 보내는지라.
 
이때 승상이 을선더러 류소저와 정혼(定婚)된 말을 이르니, 을선이 부친의 말씀을 듣고 일변 황감(惶感)하며 일변 기뻐하여 병세 점점차도 있더라.
 
각설, 이때 천자(天子) 문무백관(文武百官)을 인격(人格)을 택취(擇取)하려 하시고, 각도 행관(行關)하사 별과(別科)를 뵈일새 과일(科日)이 점점 임(臨)하였는지라.
 
이때 을선의 연광이 십팔 세라. 서책을 품에품고 장중(場中)에 들어가 본즉, 천자 열후(列侯) 종실(宗室)과 만조백관(滿朝百官)을거느리시고 전각(殿閣)에 어좌(御座)하시는지라.
 
여러 시관(試官)이 하관(下官)을 명하여 글제를 내어 걸거늘, 을선이 시지(試紙)를 펼쳐놓코 산호필(珊瑚筆) 반쯤 풀러 일필휘지(一筆揮之)하니 용사비등(龍蛇飛騰)하여 자자(字字) 주옥(珠玉)이요, 필법(筆法)은 왕일소(王逸少)라. 일천(一天)에 선장(先場)하고 장중을 두루 구경하더라.
 
천자, 여러 시관으로 더불어 경향(京鄕) 선비의 시축(試軸)을 열람하시다가 한 글 장을 보시고 칭찬불이(稱讚不已)하시며 봉내(封內)를 개탁(開坼)하여 보신즉, 전 승상 진희의아들 을선이라 하였거늘, 황상(皇上)이 대열(大悅)하여 즉시 장원을 시키시고 신래(新來)를 재촉하실새, 을선이 호명하는 소리를 듣고 여취여광하여어전(御前)에 다다라 복지(伏地)하오니, 을선이다시 명소(命召)하사 당상(堂上)에 올려 앉히시고 을선에 용모를 잠깐 살펴보신즉, 미간(眉間)이 광활함에 일월(日月) 정기(精氣) 감추었고 봉안(鳳眼)에 광채를 띠었으니 심모원려(深謀遠慮)하겠고, 호골(虎骨) 용안(龍顏)이요, 곰의 등이요, 잔나비 팔이며 이리 허리에 음성이 뇌성 같으며 신장이 구 척이라.
 
천자 특별히 사랑하사, 여러 번 진퇴(進退)하시며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제수(除授)하시고 사악(賜樂)까지 하(下)시더라. 한림이 사은숙배(謝恩肅拜)하고 궐문 밖에 나오니 한림원 시배(侍陪)와 화동(花童)과 악생(樂生)이 좌우에 나열하고, 청홍개(靑紅蓋)는 반공에 솟아 있는지라. 일위 소년이 삼층 윤거(輪車)의 높이 앉아 봉미선(鳳尾扇)으로 일광(日光)을 가리우고 대로상(大路上)으로 언연(偃然)히 지내니, 짐짓 동서양 고금영웅을 슬하에 꿇릴 만한 인물일러라. 이원풍악(梨園風樂) 소리는 원근에 진동하매 만조백관이며 장안 만민이 다투어 완상하며 칭찬 않는이 없더라.
 
이때 한림이 영친(榮親)할 사로 탑전(榻前)에 주달(奏達)하고 번제(番第)로 돌아오더라.
 
승상 부부가 한림의 손을 잡고 못내 즐겨 하시며, 즉시 익주 류상서 댁으로 기별하더라. 상서, 이 소식 듣고 크게 기뻐하여 희색(喜色)을띄어 내당(內堂)에 들어가 부인과 소저를 보고수말(首末)을 하시고 즐길새, 그제야 유모까지 놓고 기뻐하되, 노씨 홀로 겉으로 좋아하나속으로는 흉계만 생각하더라.
 
 
각설, 이때 조왕(趙王)이 한 딸을 두었으되, 자색이 비범하여 설부화용(雪膚花容)이 비할때 없어 현서(賢壻) 택하기를 널리 하더니, 마침 정을선의 풍채와 용모가 비범한 인물이며겸하여 한림학사의 위의(威儀)를 칭찬불이(稱讚不已)하며, 백 학사라 하는 사람을 보내어 청혼한즉 한림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가기를 재촉하거늘, 조왕이 대로하여 천자께 주왈(奏曰),
 
“신(臣)의 여식이 있삽기로 한림 을선에게 청혼한즉 거절하오니, 통분하옵고 애닯사외다.”
 
하거늘, 천자 청파에 즉시 을선을 명초(命招)하시니, 한림이 궐내로 들어가 복지하오니, 천자 가라사대,
 
“짐의 조카 조왕이 네게로 청혼한즉 거절하였다 하니 그것이 분명하냐?”
 
하시니, 한림이 복지 주왈,
 
“소신이 소국 천한 용재(庸才)오니 어찌 조왕의 구혼(求婚)함을 거절하오리까. 정(情)에구애(拘礙)하는 일이 앞에 있삽기로 존명(尊命)을 봉행(奉行)치 못하였나이다.”
 
상이 문왈(問曰),
 
“무슨 사정이 있는가?”
 
하시니, 한림이 주왈
 
“전 상서 류한경의 여식과 정혼하여 택일 봉채(封采)하였나이다.”
 
말씀을 주달하오니, 천자 들으시고 가라사대,
 
“사정도 그러할 뿐 아니라 혼인은 인륜대사(人倫大事)라. 금석같이 뇌정(牢定)한 혼인을 왕위(王威)로 저어(齟齬)하면 이는 인사의 어그러진 일이라. 겸하여 짐이 군부(君父)되어 백성의 선악(善惡)을 어찌 알리오.”
 
하시고, 조왕을 부르사 이 뜻으로 이르시고달래어 만류하시고, 한림에게 가라사대,
 
“또한 류한경은 죄 중에 있는지라. 네 빙부(聘父)된다 하기로 네 낯을 보아 죄를 특사(特赦)하노라.”
 
하시고, 익주로 방출(放黜)하시니, 한림이천은(天恩)을 축사(祝辭)하고 물러 나와 오더라.
 
이때 길일(吉日)이 가까워 오거늘 한림이 부친을 뫼시고 익주로 내려갈새, 한원(翰院) 시배(侍陪)와 이원풍악이며 위의(威儀) 거동을이로 측량치 못할러라.
 
 
각설, 이때 노씨 매양 소저를 죽이고자 하더니 일일은 독한 약을 음식에 넣어 소저를 주니, 소저 마침 속이 불편한지라. 이를 받아 유모를들리고 침소에 돌아와 먹으려 할새, 하늘이 살피심이 소소(炤炤)한지라.
 
홀연 난데없는 바람이 일어나 티끌이 죽에날려 들거늘, 소저가 티끌을 건져 문밖에 버리니 푸른 불이 일어나는지라.
 
대경(大驚)하여 이에 유모를 불러 연유를말하니 유모 대경하여 이에 개를 불러 죽을 먹이니 그 개 즉시 죽거늘, 소저가와 유모가 더욱놀라 차후는 주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고 유모의 집에서 밥을 지어 수건의 싸다가 겨우 연명(延命)만 하더라.
 
노씨 마음에 헤오되,
 
‘약을 먹여도 죽지 아니하니 가장 이상하도다.’
 
하고 다시 해할 계교를 생각하더니 세월이여류하여 길일이 다다르매, 정시랑(侍郞)이위의(威儀)를 갖추어 여러 날을 행하여 류부(柳府)에 이르니, 시랑의 풍채 전일보다 더배승(倍勝)하여 몸에 운문사(雲紋紗) 관대(冠帶)를 입고 허리의 금사(金絲) 각대(角帶)를 띠었으니 천상 신선이 하강한 듯하더라.
 
차시(此時), 천조(天朝) 사관(辭官)이이르렀는지라. 승상이 천은을 숙사(肅謝)하고사문(赦文)을 보니 전과(前過)를 사하여 관작(官爵)을 회복한 성지(聖旨)라.
 
류승상이 북향(北向) 사은하고 사관을 관대(寬待)하여 보낸 후, 류승상이 초왕(楚王)부자를 맞아 기간(其間) 사모하던 회포를 펼새, 눈을 들어 정시랑을 보니 옥모(玉貌) 풍채전(前)에서 배승(倍勝)한지라.
 
기쁨을 이기지 못하고 좌상(座上) 제빈(諸賓)이 일시에 승상을 향하여 쾌서(快壻)얻음을 치하(致賀)하니, 류공이 희불자승(喜不自勝)하여 치하를 사양하지 아니하더라.
 
이튿날 예를 갖추어 전안(奠鴈)할새, 근처 방백(方伯) 수령(守令)이며, 시비와 하예(下隸) 등 쌍을 무리 지어 신부를 인도하여 이르매 신랑이 교배석(交拜席)에 나아가 눈을 들러 신부를 잠깐 보니, 머리에 화관(花冠)을 쓰고 몸의 채의(彩衣)를 입고, 무수한 시녀가옹위(擁衛)하였으니 그 절묘한 거동이 전에추천하던 모양과 배승하더라.
 
그러하나 신부가 수색(愁色)이 만안(滿顔)하고 유모가 눈물 흔적이 있거늘, 심중(心中)의 괴이하니 누구를 향하여 물으리오.
 
이에 교배(交拜)하기를 마치고 동방(洞房)의 나아가니, 좌우의 ○○과 운모병(雲母屛)이 황홀한지라. 괴로이 소저를 기다리더니 이윽고 소저가 유모 촉(燭)을 잡히고 들어오거늘, 시랑이 팔을 들어 맞아 좌(座)를 정한 후에, 인(因)하여 촉을 물리고 원앙금리(鴛鴦衾裏) 나아갔더니 문득 창외(窓外)에 수상한 인적이 있거늘 마음의 놀라 급히 일어 앉아 들으니 어떤 놈이 말하되,
 
“네 비록 시랑 벼슬을 하였으나 남의 계집을품고 누웠으니 죽기를 아끼지 아니한다.”
 
하거늘 창틈으로 열어보니 신장이 구 척이요, 삼 척 장검(長劍)을 비끼고 섰거늘, 이를 보매심신이 떨리어 칼을 빼어 그놈을 죽이고자 하여 문을 열고 보니 문득 간데없거늘, 분을 참지못하여 탄식하고 생각하매,
 
‘오늘날 교배석에서 보니 수색(愁色)이 만안 (滿顔)하기로 괴이히 여겼더니 원래 이런 일이있도다.’
 
하고 분을 이기지 못하여 칼을 들어 소저를죽여 분을 풀고자 하다가 또 생각하되,
 
‘내 옥 같은 마음을 어찌 저 더러운 계집을침노하리오.’
 
하고 옷을 입고 급히 일어나니, 소저가 경황(驚惶) 중 옥성(玉聲)을 열어 가로되,
 
“군자(君子)는 잠깐 앉아 첩의 말을 들으소서.”
 
하거늘, 시랑이 들은 체 아니하고 나와, 부친께 수말을 고하고 바삐 가기를 청하니, 초왕이대경하여 바삐 승상을 청하여 지금 발행하여상경함을 이르고, 하예(下隸)를 불러 행장을 차리라 하니 류승상이 계(階)에 내려 허물을 청하여 왈,
 
“어찌된 연고로 이 밤에 상경코자 하시느뇨?”
 
정공 부자 일언(一言)을 부답(不答)하고 발행하더라.
 
 
원래 이 간부(姦夫)로 칭하는 자는 노녀의 사촌 오라비 노태니, 노씨 전일에 독약을 시험하되 무사함을 애달아 주사야탁(晝思夜度)하여 소저 죽이기를 꾀하더니 문득 길일이 다다르매 일계(一計)를 생각하고 이에 심복으로 노태를 불러 가만히 차사(此事)를 이르고 금은을 많이 주어 행사(行事)하라 하매, 노태 금은을 욕심내어 삼척 장검을 짚고 원광(圓光)을 띠어 소저 침소의 이르러 동정을살피고 입에 담지 못할 말로 류소저를 갱참(坑塹)에 넣으니, 가련타, 류 소저가 백옥 같은 몸에 누명을 실으니 원정(怨情)의 뉘에게 말하리오.
 
불승분원(不勝忿怨)하여 칼을 빼어 죽으려하다가 다시 생각하니,
 
‘이렇듯 죽으면 내 일신이 옥 같음을 뉘 알리오.’
 
하고 이에 속적삼을 벗어 손가락을 깨물어피를 내어 혈서(血書)를 쓰니 눈물이 변하여피 되더라.
 
류승상이 초왕을 보내고 급히 안으로 들어와 실상(實狀)을 알고자 하니, 노씨는 모르는 체하고 먼저 문왈,
 
“신랑이 무슨 연고로 심야(深夜)에 급히 가나이까?”
 
승상이 가로되,

“내 곡절(曲折)을 모르매 제 노기 충천(衝天)하여 일언을 부답하더니 어찌 한 곡절을알리오. 자세히 알고자 하노라.”
 
노씨 승상의 귀에 대고 왈,
 
“첩이 잠결에 듣사오니 신랑이 방문 밖에서어떤 남자와 소리 지르며 여차여차(如此如此)하니 아무렇거나 추련에게 물으소서.”
 
승상이 즉시 소저 침소의 가니, 소저가 이불을 덮고 일어나지 아니하니, 시비로 이불을 벗기고 꾸짖어 왈,
 
“네 아비 들어오되 동(動)함이 없으니 이 무슨 도리며 정랑이 무슨 일로 밤중에 졸연(猝然)히 돌아가니 이 무슨 일인지 너는 자세히알 지니 실진무은(悉陳無隱)하라.”
 
소저가 겨우 고왈(告曰),
 
“야야(爺爺) 불초(不肖)한 자식을 두었다가집을 망하게 하오니, 소녀의 불효 만사무석(萬死無惜)이로소이다.”
 
하고 함루무언(含淚無言)하니 승상이 다시이르되,
 
“너는 어찌 일언을 아니 하느뇨?”
 
재삼 무르되 종시(終始) 일언을 답하지 아니하고 눈물이 여우(如雨)하니, 승상이 각하되,
 
‘전일에 지극한 효성으로 오늘날 불효를 끼치니 무슨 곡절이 있도다.’
 
하고, 일어나 와당(外堂)으로 나오더라.
 
차시, 유모가 소저를 붙들고 통곡하니 소저가눈물을 머금고 왈,
 
“유모는 나의 원통한 죽음을 불쌍히 여겨 후일(後日)에 변백(辨白)함을 바라노라.”
 
하고, 혈서 쓴 적삼을 주니, 유모가 소저가죽을까 겁(怯)하여 단언(斷言)을 위로하니 소저가 다시 일언을 아니하고 반일(半日)을 애곡(哀哭)하다가 명(命)이 끊어지니 유모가 적삼을 안고 통곡하며, 외당에 나와 소저의 명이진(盡)함을 고하니 승상이 대경하여 이르되,
 
“병 들지 아니한 사람이 반일이 못하여 세상을 버리니 이상하도다.”
 
하고 일장(一場)을 통곡하고 유모로 인도하라 하고 소저의 빈소(殯所)에 이르니 비풍(悲風)이 소슬하여 능히 들어갈 수 없더라.
 
차후는 사람이 소저 빈소 근처에 이른즉 연(連)하여 죽으니 승상이 능히 염습(殮襲)하지 못하고 종일 호곡(號哭)하다가, 유모의 드린 바 혈서를 쓴 적삼을 내어 보니 대개 유모에게 한 글이라. 그 글에 하였으되,
 
“추련은 삼가 글을 유모에게 부치노라. 내 세상의 난지 삼 일만에 모친을 이별하니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마는, 유모의 은혜를 입어 잔명(殘命)을 보존하여 십오 세에 이르러 정가(鄭家)에 정혼(定婚)하매, 나의 팔자가 갈수록 무상하여 귀신의 작희(作戲)를 만나 청춘의 원혼이 되니 한하여 부질없도다. 천만의외에 동방화촉(洞房華燭) 깊은 밤에어떤 사람이 큰 칼을 들고 여차여차하매 정랑(鄭郞)이 어찌 의심치 않으리오. 나를 죽이려하다가 멈추고 나아가니 내 무슨 면목으로 부친과 유모를 보며 세상의 있을 마음이 있으리오. 슬프다. 외로운 혼백이 무주공산(無主空山)에 임자 없는 귀신이 되리로다. 죽은 내 몸을점점이 풀 위에 얹어 오작(烏鵲)의 밥이 되면이것이 내 원(願)이요, 금의(錦衣)로 안장(安葬)하면 혼백이라도 한을 풀지 못하리로다. 유모의 은혜를 만분지일(萬分之一)이라도갚지 못하고 누명을 쓰고 죽으니 원한이 철천(徹天)하다. 지하에 돌아가 모친 혼령을 뵈오면 나의 애매(曖昧)한 악명(惡名)을 고할까 하노라.”
 
하였더라. 승상이 남파(覽罷)에 방성대곡(放聲大哭)왈,
 
“이 계교 내기는 분명 가내거사(家內巨事)로다. 내 어찌하면 명백히 알리오.”
 
하며, 일변 노씨의 시비를 엄형(嚴刑) 추문(推問)하니, 시비 등이 황황(遑遑) 망극(罔極)하여 아무리 할 줄 모로더라.
 
승상이 이제 시비의 복초(服招) 아니함을노하여 엄형 추문하더니, 홀연 공중으로부터 외쳐 왈,
 
“부친은 애매한 시비를 엄형하지 마소서. 소녀의 애매한 누명을 자연 알리이다.”
 
하더니, 홀연 방안의 앉았던 노씨, 문밖에 나와 없어지며 안개 자옥하고 무슨 소리 나더니, 노씨 피를 무수히 토하고 죽는지라.
 
모두 이르되, 불측(不測)한 행실을 하다가이렇듯 죽으니 신명(神明)이 무심치 아니하다하고, 불쌍한 소저는 이팔청춘에 몹쓸 악명을쓰고 죽으니, 철천(徹天)한 원한을 뉘라서 설치(雪恥)하리오.
 
노태는 그 경상(景狀)을 보고 스스로 결항(結項)하고, 노씨 자녀는 그날부터 말도 못하고 인사(人事)를 버렸더라.
 
일변 소저를 염빈(殮殯)하려 하여 방문을연 즉 사나운 기운이 일어나 사람에게 쏘이며연하여 죽는지라. 감히 다시 가까이 가도 못하더니, 홀연 소저에 곡성이 철천하며 근처 사람들이 그 곡성을 들은즉 연하여 죽는지라.
 
일촌(一村) 인민(人民)이 거의 죽게 되었으니 승상이 어찌 홀로 살리오. 인하여 병들어 기세(棄世)하니 유모 부처(夫妻) 통곡하며 선산(先山)에 안장하더라.
 
이후로 마을 사람이 점점 패하여 흩어지니일촌(一村)이 비었으되, 오직 유모 부처는 나가려 하면 소저에 혼이 나가지 못하게 하고, 밤마다 울며 유모에 집에 와 있다가 달이 기울면침소로 돌아가더라.
 
 
차시 초왕이 을선을 데리고 여러 날 만에 황성(皇城)에 득달(得達)하여 용전(龍殿)에조회(朝會)하니 상(上)이 가라사대,
 
“어찌하여 이리 속히 오는가?”
 
시랑이 전후 사연을 주달하니, 상이 대경하사류승상 부녀를 잡아 오라 하시니, 금오랑(金吾郞)이 주야배도(晝夜倍道)하여 내려가니, 류승상 부녀 다 죽고 일문(一門) 공허(空虛)하였는지라.
 
이대로 계달(啓達)하니, 상이 그 죽음을 연측(憐惻)하시고, 이에 하교(下敎)하사 조왕의 딸과 의혼(議婚)하라 하시니, 초왕이 기뻐즉시 택일 성례(成禮)하고 천정(天庭)에 들어가 사은하니, 천자가 기뻐하사 조왕의 딸로정렬부인(貞烈婦人)을 봉하시고, 을선으로 좌승상(左丞相)을 하(下)이시니, 을선이 천은을숙사(肅謝)하고 집에 돌아와 부모께 뵈오니, 왕이 승상을 애중(愛重)함이 극(極)하더라.
 
 
초왕이 홀연 득병(得病)하여 백약이 무효하니 필경이 살지 못할 줄 알고 승상에 손을 잡고 왈,
 
“나 죽은 후라도 슬퍼 말고 충성을 다하여 나라를 섬기라.”
 
하고 부인을 돌아보아 왈,
 
“내 돌아간 후 가사(家事)를 총찰(總察)하여 나 있을 때와 같이 하라.”
 
하고 예복(禮服)을 개착(改着)하여 상에누워 졸(卒)하니 시년(時年)이 육십구 세라. 일가 망극하여 왕비와 승상이 자주 기절하고상하 노복이 일시에 통곡하니 곡성이 진동하더라.
 
승상이 비로소 인사를 수습하여 왕비를 위로하고 노복을 거느려 택일하여 선산에 안장하고세월을 보내더니, 천자가 초왕에 죽음을 슬퍼하사 제문(祭文) 지어 치제(致祭)하시고 승상을 위로하실새,
 
세월이 여류(如流)하여 삼 년을 마치매 승상이 궐하(闕下)의 나아가 복지하오니, 상이 승상의 손을 잡으시고 삼 년이 덧없이 지냄을 새로이 슬퍼하시며 승상의 관작을 복직(復職)하시며 황금을 많이 사급(賜給)하시니,
 
승상이 곧 불수(不受)하오니 상이 불윤(不允)하시고 파조(罷朝)하시니, 승상이 천은을숙사하고 부중(府中)에 돌아와 왕비께 뵈오니, 왕비 또한 애중(愛重)함을 마지 아니하시더라.
 
 
홀연 익주의 자사(刺史)가 장계(狀啓) 하였으되,
 
“익주 일도(一道)의 흉년이 자심(滋甚)하고 또 괴이한 변이 있어, 류승상의 여아(女兒)가 청춘에 요사(夭死)하매 그 원혼(冤魂)이흩어지지 아니하여 그 곡성을 사람이 들으면곧 죽으며, 겸하여 백성이 화(化)하여 도적이되오니, 원(願) 폐하는 어진 신하를 보내어 안무(按撫)하심을 바라나이다.”
 
하였더라.
 
상이 장계를 보시고 근심하사 만조백관을 모으시고 익주 진무(鎭撫)함을 의론하시니, 좌승상 정을선이 출반주(出班奏) 왈,
 
“신이 무재(無才)하오나 익주를 진무하리이다.”
 
상이 대희하사 을선을 순무도어사(巡撫都御史)를 제수하시고 인검(引劍)과 절월(節鉞)을 주사 왈,
 
“익주를 수이 진무하고 돌아와 짐의 바람을잊지 말라.”
 
하시니, 어사 하직(下直)하고 부중에 돌아와왕비와 정렬부인에게 하직을 고하고, 역졸(驛卒)을 거느려 여러 날만에 익주에 득달하여옛일을 생각하고 류승상 부중에 이르니, 인적이 끊기고 그리 장려(壯麗)하던 누각이 빈터만남았고, 다만 일간(一間) 초옥(草屋)이 수풀 속에 있을 뿐이요, 다른 인가가 없으니 물을 곳이없는지라.
 
두루 방황하더니 수풀 속에 사람 자취 있거늘 배회하여 사람을 기다리더니, 인적이 다시없어지고 일색(日色)이 서산에 지는지라. 갈 바를 몰라 주저하더니, 멀리 바라보니 산곡간(山谷間)에 연기 나거늘, 인하여 찾아가니 다만일간 초옥이라. 주인을 찾으니 한 노고(老姑)가 나와 문왈,
 
“귀댁이 어디 계시기에 뉘를 찾아 이 심산에서 방황하시나이까?”
 
어사가 답왈,
 
“류승상 집을 찾아가더니 길을 그릇 들어 이에 왔으니 하룻밤 자고 가기를 청하노라.”
 
할미 답왈,
 
“유(留)하시기는 어렵지 아니하되, 양식이없으니 어찌하리까.”
 
하고, 죽을 드리거늘, 어사가 하저(下箸)하고 노고와 같이 앉아 이윽히 담화하더니, 문득철천한 곡성이 나며 점점 가까이 오니, 그 할미일어나며 울거늘, 어사가 괴이 여겨 보니 홀연공중으로부터 한 여자가 울며 내려와 할미를책(責)하여 왈.
 
“어미를 보러 왔더니 어찌 잡인(雜人)을 들이뇨? 외인이 있어 내 들어가지 못하노라.”
 
하고, 애연이 울며 돌아가니 그 노고의 부처또 울며 들어오거늘, 어사가 괴히 여겨 문왈,
 
“어떤 사람이기에 깊은 밤에 울고 다니느뇨?”
 
주인 노고가 울기를 끊고 답왈,
 
“노고의 딸이로소이다.”
 
어사가 왈,
 
“주인의 딸이면 무슨 일로 울고 다니느냐?”
 
노고가 답왈,
 
“상공이 이렇듯 물으시니 대강 고하리이다. 우리 상전은 류 승상이시니 승상 노야(老爺)황성에서 벼슬하시더니 천자께 득죄하고 이곳에 오신 후 정실부인 최씨 다만 일녀를 낳으시고 삼 일만에 기세하시니, 노야가 후실(後室) 노씨를 얻으시매, 노씨불인(不仁)하여 소저를 죽이려 하여 죽에 약을 넣어 주니 천지신명이 도우사 홀연 바람이일어나 죽에 티끌이 들매 인하여 먹지 아니하고 개를 주니 그 개 먹고 즉시 죽거늘, 그 후는놀라 밥을 제 집에서 수건에 싸다가 연명하였으며, 길례(吉禮) 날 밤에 노씨 제 사촌 노태를 금을 주고 달래여 칼을 가지고 와 작난하니, 정시랑이 그 거동을 보고 의심하여 밤에 돌아갔으며, 그 후 소저가 분원(忿怨)하여 자처(自處)하매 염습고자 하나 사나온 기운이 사람을 침노하니 인하여 빈소에 가까이 가지 못하였더니, 그 후에 소저에 원혼이 공중에서 울매 동리사람들이 그 곡성을 들은 자이면 병들어 죽으니 견디지 못하여 집을 떠나 타처(他處)로 거접(居接)하되, 우리 양인(兩人)은 관계치 아니하기로 이곳에 있사온즉, 소저가 밤마다 울고오나이다.”
 
하고 인하여 혈서 쓴 적삼을 내어놓으니 어사가 받아보매 놀라고 몸이 떨려 방성대곡하다가 이윽고 진정하여 주인에게 왈,
 
“내 과연 정시랑이니, 사세 여좌(如左)한즉어찌하리오. 내 불명(不明)하여 여자의 원을 끼치니 후일에 반드시 앙화(殃禍)를 받으리로다.”
 
유모 부처가 이 말을 듣고 반가움을 이기지못하여 붙들고 방성대곡 왈,
 
“시랑 노야가 어찌 이곳에 오시나이까?”
 
어사가 또한 낙루(落淚) 왈,
 
“내 과연 모년 월일에 나에 부친을 뫼시고 류승상 집에 내려왔을 제, 후원에서 화초를 구경하다가 추천하는 소저를 보고 올라와 병이 되어 사경에 이르렀으니 부친이 근뇌하사 류승상께 통혼하였더니, 승상이 허혼(許婚)하기로 살아났더라.”
 
또 천자가 사혼(賜婚)하시되, 듣지 아니하고 성례하러 내려와 신혼 초일(初日)에 흉한한 놈이 칼을 들고 여차여차하매 그 밤으로 올라가던 말을 다하고 조왕에 사위된 말과 옛 일을 생각하고 찾아온 말을 세세히 일러 통곡하니 주객(主客)이 슬퍼함을 마지 아니하더라.

어사가 왈,
 
“사세 여차하니 어찌하면 소저를 다시 보리오.”
 
유모가 왈,
 
“우리 소저가 별세(別世)하신 지 오래되어 내가 가면 백골이 된 소저가 역력히 반기시나, 타인은 그 집 근처에도 못 가되, 시랑 노야가 가시면 소저에 정혼(精魂)이 또한 반기실 듯하니 내일 식전(食前)에 가사이다.”
 
하고 그날 밤을 겨우 지내고 익일(翌日)에유모를 따라 한가지로 소저에 빈소에 이르러는, 유모가 먼저 들어가 이르되,
 
“소저야, 정시랑 상공이 오셨나이다.”
 
소저가 대왈(對曰),
 
“어미는 어찌 저런 말을 하느냐. 시랑이 나를버렸거든 다시 오기 만무(萬無)하더라.”
 
유모가 다시 이르되,
 
“내 어찌 소저에게 허언(虛言)을 하리이까. 지금 밖에 오신 상공이 곧 정시랑이시니 들어오시라 하리이까.”
 
소저 이르되,
 
“정시랑이신지 분명히 옳으냐?”
 
유모가 왈,
 
“어찌 거짓말을 하리이까.”
 
하고, 나와 이르러 고하니, 어사가 친히 문밖에서 소리하여 왈,
 
“생(生)이 곧 정을선이니 나의 불명혼암(不明昏暗)하므로 부인이 누명을 싣고 저렇듯 원혼이 되었으니 그 애달픈 말씀을 어찌 다 측량하오리까. 을선이 황명을 받자와 이곳에 와서부인에 애매함을 깨닫사오니 백골이나 보고 이곳에서 한가지로 죽어 부인의 각골지원(刻骨之怨)을 위로하고자 하나니 부인의 명백한 혼령은 용렬(庸劣)한 한(恨)을 을선에 죄를 사하시면 잠깐 뵈옵고 위로함을 바라나이다.”
 
언필(言畢)에 방성대곡하니 소저가 유모를불러 전어(傳語) 왈,
 
“정시랑이 이곳에 오시기 만무하니 어디서 괴객(怪客)이 와서 원통히 죽은 몸을 이렇듯 조르느뇨. 부질없이 조르지 말고 빨리 가라.”
 
하는 소리에 연하여 원근에 사무치는지라. 유모가 만단개유(萬端改諭)하되 듣지 아니하니, 시랑이 유모를 대하여 왈,
 
“내 이렇듯 말하되 소저가 듣지 아니하니 내위격(違格)으로 들어가 보리라.”
 
유모 말려 왈,
 
“그러하면 좋지 않음이 있을지라. 깊이 생각하소서.”
 
어사가 생각하되,
 
‘이는 철천지원(徹天之寃)이니 범연(泛然)히 보지 못하리라.’
 
하고, 창황 중 생각하고 즉시 익주 자사에게 관자(關子)하되,
 
‘익주 순무어사 정을선은 자사에게 급히 할말이 있으니 불일내(不日內)로 류승상 부중녹림원상(綠林園上)으로 대령(待令)하라.’
 
하니, 익주 자사가 관자를 보고 황황히 예를갖추어 녹림원상으로 오니, 어사가 녹음 중에앉아 민간 정사(政事)를 묻고 왈,
 
“내 전일에 류 승상에게 여차여차한 일이 있더니, 마침 이리 지내다가 유모를 만나 기간 사연을 자세히 들으니 그 소저가 별세하온지 삼년이로되, 이리이리하오니 어찌 가련치 않으리오. 이러므로 그 원혼을 위로하고자 하니 자사는 날을 위하여 해혹(解惑)케 하라.”
 
자사가 청파에 소저 빈소 앞에 나아가 꿇어 고왈,
 
“이는 곧 정 상공일시 분명하고, 나는 이 고을 자사이옵더니 정 어사에 분부를 들어 아뢰옵나니 존위(尊位)하신 신령은 살피소서.”
 
소저가 유모를 불러 전어 왈,
 
“아무리 유명(幽明)이 다르나 남녀 분명하거늘 어찌 외인을 상접(相接)하리오. 아무리 분명한 정시랑이라 하되, 내 어찌 곧이들으리오.”
 
어사가 하릴없어 이 연유를 천자께 주(奏)하니, 상이 들으시고 잔잉히 여기사 원혼을 추증(追贈)하여 충렬부인(忠烈婦人)을 봉하시고, 직첩(職牒)과 교지(敎旨)를 내리시니, 언관(言官)이 주야 배도하여 내려와 소저 빈소 방문 앞에서 교지를 자세히 읽으니 하였으되,
 
“아무리 유명(幽明)이 다르나 아비를 모르고임군을 모르리오. 교지를 내려 너에 원혼을 깨닫게 하노라. 정을선의 상소(上疏)를 보니 너에참혹한 말을 어찌 다 측량하리오. 너를 위하여조서를 내리나니 짐에 뜻을 저버리지 말라. 만일 조서를 거역한즉 역명(逆命)을 면치 못하리라.”
 
하였더라.
 
소저가 듣기를 다하매 그제야 유모를 불러왈,
 
“천은이 망극하사 아녀자에 혼백을 위로하였고 또 가부(可否)가 적실(的實)한 줄을 밝히시니 황은이 태산 같도다.”
 
인하여 시랑을 청하여 들어오라 하거늘, 어사가 유모를 따라 들어가 보니, 좌우 창호(窓戶)를 겹겹이 닫았거늘, 어사가 좌우로 살피니 티끌이 자옥하여 인귀(人鬼)를 분변(分辨)하지못할지라.
 
마음에 비창(悲愴)하여 이불을 들고 보니비록 살은 썩지 않았으나 시신(尸身)이 뼈만남은지라. 어사가 울며 왈,
 
“낭자야. 나를 보면 능히 알 소냐?”
 
그 소저가 공중으로부터 대답하되,
 
“첩의 용납하지 못할 죄를 사(赦)하시고 천리원정(千里遠程)에 오시니, 아무리 백골인들어찌 감격하지 않으리오. 첩의 박명(薄命)한 죄인으로 상공의 하해(河海) 같은 인덕(仁德)을 입사와 외람(猥濫)하온 직첩을 받자오니, 어찌감은(感恩)치 않으리이까.”
 
어사 왈,
 
“어찌하면 낭자가 다시 살아날꼬.”
 
소저가 답왈,
 
“첩을 살리려 하시거든 금성산 옥윤동을 찾아가 금성 진인(眞人)을 보고 약을 구하여 오시면 첩이 회생(回生)하려니와 상공이 어찌 가구하여 오심을 바라리까.”
 
어사 기뻐 즉시 유모를 분부하여 행장을 차리라 하여 유모 부처를 데리고 길에 올라 여러날 만에 옥윤동에 이르러, 기구(崎嶇)한 산천을 넘어 도관(道官)을 찾되, 운무(雲霧)가 자욱하여 능히 찾을 길이 없는지라.
 
마음의 초조하여 두루 찾더니 한 곳에 이르니, 일좌(一座) 묘당(廟堂)이 있거늘 들어가보니 인적이 없어 티끌이 자욱하거늘, 두루 찾다가 하릴없어 도로 나오더니, 묘당 앞 큰 나무아래 한 구슬 같은 것이 놓였으니 빛이 찬란하고 향취 응비(應飛)하거늘 이상히 여겨 집어몸에 감추고, 이에 묘당을 떠나 유모 부처를 데리고 산과고개를 넘어 두루 차지니 들어갈수록 첩첩한산중이요 능히 사람을 볼 길이 없는지라. 하릴없어 이에 산에 내려와 촌점(村店)을 찾아 밤을 지내고 익주로 돌아와 소저 빈소로 들어가니 소저가 반겨 왈,
 
“상공이 약을 구하여 오시니이까?”

어사가 답왈,
 
“슬프다. 약도 못 얻어 오고, 다만 행역(行役)만 허비(虛費)하니이다.”
 
소저가 왈,
 
“상공에 몸에 기이한 광채 비취니 무엇을 길에서 얻지 아니하시니이까?”
 
어사가 왈,
 
“이상한 구슬이 있기로 가져오니이다.”
 
소저가 왈,
 
“그것이 회생하는 구슬이니 첩이 살 때로소이다.”
 
하고, 다시 말을 아니 하니 어사가 그 구슬을소저 가의 옆에 놓고 소저와 동침하여 자다가놀라 깨니 동방이 밝았는지라. 일어나 보니 구슬 놓였던 곳에 살이 연지(臙脂) 빛같이 내살았거늘, 그제야 신기히 여겨 유모를 불러 뵈고 구슬을 소저의 몸에 굴리니 불과 하룻밤 사이에 살이 윤택하여 붉은빛이 완연하고 옛 얼굴이 새로운지라. 반김을 이기지 못하여 익주자사에게 약을 구하여 일변 약물로 몸을 씻기고 약을 먹이니 자연 환생하여 인사를 차리는지라.
 
어사가 희불자승(喜不自勝)하여 가까이 나아가니 소저가 죽었던 일을 전연(全然)히 잊어버리고 어사를 대하매 도리어 부끄러워 유모를 붙들고 통곡 왈,
 
“이것이 꿈이냐, 생시냐. 부친이 어디 계시뇨?”
 
하고 슬피 통곡하니 어사가 소저의 옥수(玉手)를 잡아 위로하고 살펴보니 요조(窈窕)한색덕(色德)이 절묘하여 짐짓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
 
생이 대희하여 ○○에 기별하여 교자(轎子)를 갖추어 소저를 황성으로 치송(治送) 할새, 소저가 유모를 데리고 승상 산소에 나아가 슬피 통곡하니, 일월(日月)이 무광(無光)하고 초목금수(草木禽獸)가 의(依)하여 슬퍼하더라.
 
침실에 돌아와 유모 부처를 데리고 황성으로올라올새 소저는 금덩을 타고 유부(乳夫)는대완마(大宛馬)를 탔으며, 각읍 시녀 녹의홍상(綠衣紅裳)으로 쌍쌍이 옹위(擁衛)하여 올라가니, 소과(所過) 군현의 인민이 다투어 구경하며 서로 이르되,
 
“이런 일은 천고에 없다.”
 
하더라. 어사가 왈,
 
“나는 익주 일도(一道)를 진무(鎭撫)하기로지금 올라가지 못하나니 서찰(書札)을 가지고올라가라.”
 
하더라. 소저가 여러 날만의 황성에 득달하여왕비께 뵈고 전후 수말을 고하니, 왕비 소저의손을 잡고 낙루(落淚) 왈,
 
“그대의 기상을 보니 천고의 숙녀이거늘 초년(初年) 팔자가 기험(崎險)하여 원통한 누명을실어 여러 해를 일월을 보지 못하였으니, 세상사를 측량치 못하리로다.”
 
류씨 고왈,
 
“소첩의 팔자가 무상(無常)하옵더니 뉘를 한하리까. 황상의 넓으신 은혜와 어사의 하해지덕(河海之德)으로 세상에 다시 회생하여 밝은 일월을 보오니, 황은이 백골난망(白骨難忘)이로소이다.”
 
언파(言罷)에 산연(潸然) 수루(垂淚)하더라.
 
 
차시, 천자가 들으시고 예관(禮官)을 보내사, 충렬부인께 치하하시고, 왕비와 충렬부인이 못내 천은을 칭송하며 충렬부인이 왕비를지성으로 섬기고 정렬부인을 예로써 대접하며노복을 은의(恩意)로 구휼(救恤)하니, 왕비지극히 사랑하며 노복 등이 은혜를 칭송하더라.
 
일일은 왕비 충렬부인과 정렬부인을 불러 가로되,
 
“정렬 현부(賢婦)는 충렬의 버금이니 차례를 분명히 하라.”
 
류씨 고왈,
 
“그렇지 아니하나이다. 정렬부인은 정문(旌門)의 먼저 들어와 존고(尊姑)를 섬겼삽고, 첩은 나중의 입문(入門)하였사오니, 원비(元妃) 되옴이 불가(不可)하나이다.”
 
왕비 왈,
 
“현부를 먼저 징빙(徵聘)한 바이니 황상께주하여 선후(先後)를 정하리라.”
 
하고, ○○이 연유를 천자께 주달하니 상이하교하사 충렬부인으로 원비를 정하라 하시니, 류씨 다시 사양치 못하고, 원비 소임을 감당하여 구고를 지효(至孝)로 섬기니 왕비와 가중(家中)이 다 기뻐하되, 정렬부인이 심중에 애달아 황상을 원망하고 왕비를 미워하여 가만히충렬부인 해하기를 꾀하더라.
 
 
차시 어사가 익주 일도를 순무하여 백성을인의로 다스리고 선자(善者)를 승직(昇職)하고 불선자(不善者)를 파직(罷職)하며 탐관자(貪官者)를 중률(重律)로써 선참후계 (先斬後啓)하니, 불과 수년지내의 천하가 태평하더라.
 
서천 사십일 주를 순무하기를 마치매 황성으로 올라와 탑전에 봉명(奉命)하니 상이 어사의손을 잡으시고 못내 기뻐하시고, 또 류씨를 살려 돌아온 일을 치하하시니 어사가 복지 주왈
 
“이러하옵기는 다 황상의 넓으신 덕택이오니신이 만 번 죽사와도 천은을 다 갚지 못하리로소이다.”
 
천자가 위로하시고 벼슬을 돋우어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우승상(右丞相)을 하이시고, 상사를 많이 하시니 승상이 천은을 숙사하고 퇴조(退朝)하여 돌아와 부왕(父王)과 모비(母妃)께 뵈오니 왕비 반기며 눈물을 드리워류씨 생환함을 못내 칭찬하시고 신기히 여기더라.
 
양 부인이 차례로 돌아와 예를 마치매 승상이 또한 류씨를 돌아보와 원정(遠程)에 무사히득달함을 치하하고 누수가 옥안에 이음차니, 부인이 염슬(斂膝) 왈,
 
“첩이 무사히 올라오기는 승상의 덕이요, 즐거움을 어찌 이로 측량하리까.”
 
하더라. 이날 밤에 류씨 침소에 들어가니, 류씨 맞아 좌정 후 염임(斂衽) 고왈,
 
“상공은 너무 첩을 생각하지 마시고 조부인을친근히 하옵소서.”
 
승상이 답왈,
 
“내 어찌 조씨를 박대하리오. 부인은 여차(如此) 염려를 말라.”
 
하고, 부인의 옥수를 잡고 침석(寢席)에 나아가니 부인이 옛일을 생각고 비희교집(悲喜交集하여 탄식하거늘, 승상이 위로 왈,
 
“고진감래(苦盡甘來)는 우리를 두고 이름이라. 어찌 오늘날 이렇듯 만남을 뜻하였으리오.”
 
하며, 언소(言笑)가 작약(雀躍)하니, 유모기뻐 사례하여 가로되,
 
“양위(兩位) 저렇듯 즐기시니 노신(老身)의한이 다시 없도소이다.”
 
승상이 소왈(笑曰),
 
“유모의 정성으로 부인이 회생하였으니 노고에 덕은 산이 낮고 바다가 얕은지라. 어찌 생전에 다 갚으리오.”
 
하며 즐겨 하더니 이미 야심(夜深)하매 촉을창외로 물리니 유모가 제 방으로 돌아와 지아비 충복에게 왈,
 
“우리 이제 죽어도 한이 없도다. 승상이 우리소저를 사랑하심이 지극하니 어찌 즐겁지 않으리오.”

충복이 듣고 탄식 왈,
 
“상공이 충렬부인 사랑하심이 도리어 즐겁지아니하도다. 후일 반드시 좋지 아니한 일 있으리라.”
 
할미 문왈,
 
“그 어인 말인고?”
 
답왈,
 
“정렬부인은 조왕에 딸이니, 국족(國族)으로 세력이 중한 부인이요, 위인(爲人)이 양선(良善)치 못하니, 승상이 충렬부인을 편벽(偏僻)되이 사랑하시면 정렬부인이 시기할 것이니, 일후(日後)에 보면 알려니와 무슨 연고가있을까 하노라.”
 
유모가 청파에 그러이 여겨 또한 염려하더라.
 
 
차시 승상이 류부인 침실에서 자고, 익일 야(夜)에 조부인 침소에 들어가니 조부인 왈,
 
“첩의 곳에 어찌 들어오시니까? 류씨의 침소로 가소서.”
 
승상이 웃으며 내념(內念)에 그 현숙(賢淑)지 못함을 미욱하니 여기더라.
 
 
차시 국태민안(國泰民安)하고 사방이 무사하여 백성이 격양가(擊壤歌)로 일을 삼으니이러므로 승상이 수유(受由)를 얻어 양 부인을 데리고 날마다 풍악을 주(奏)하며 열락(悅樂)하는지라.
 
만조백관(滿朝百官)이 놀기를 다투어 날마다승상부에 모여 가무(歌舞)로 열락하니 장안 백성들이 이르되,
 
“정 승상에 유복한 팔자는 짐짓 곽분양(郭分陽)을 부러워 않으리라.”
 
하더라.
 
차시 류부인이 잉태한 지 이미 칠 삭이라. 조부인이 날로 시기하여 매양 류부인을 해할 마음을 두나, 승상이 가내(家內)를 명찰(明察)하매 능히 행사치 못하고 애말라 함을 이기지못하더라.

나라가 태평하여 정(正)히 일이 없더니 문득 서방(西方) 절도사(節度使)의 급한 표문(表文)을 올리니, 상이 보시매 다른 사외(事外)아니라,
 
‘서융(西戎)이 반(叛)하여 서방 삼십여 성을 쳐 항복 받고 승승장구하여 물밀 듯 황성을향하되, 능히 막을 길이 없사오니, 원 폐하는명장을 택하사 조석(朝夕)의 급함을 방비(防備)하소서.’
 
하였더라. 상이 보시고 대경하사 만조백관을 모으시고의논하실새, 좌승상 정을선이 출반주 왈,
 
“서융이 강포(强暴)함을 믿고 외람(猥濫)히대국을 참범하오니, 신이 비록 재조 없사오나일지병(一枝兵)을 빌리시면 한 번 북 쳐 서융을 사로잡아 폐하에 근심을 덜리이다.”
 
상이 대희하여 왈,
 
“경의 충성과 지략을 짐이 아는 바이라. 무슨근심이 있으리오. 부디 경적(輕敵)하지 말고서융을 쳐 항복 받아 대국 위엄을 빛내고 경에이름을 사해(四海)에 진동케 하라.”
 
하시고, 십만 대병과 맹장(猛將) 천여 원(員)을 주시고, 천자가 어필(御筆)로 대장 수기(帥旗)에 친히 쓰시되,
 
‘대송(大宋) 좌승상(左丞相) 병마도총독(兵馬都總督) 대사마(大司馬) 대장군(大將軍) 평서대원수(平西大元帥) 정을선.’
 
이라 하였으니, 을선에 엄숙함이 맹호(猛虎 같더라.
 
즉일(卽日) 발행할새 동 십일 월 십일 일갑자에 행군령(行軍令)을 놓고 잠깐 집에 돌아와 모비(母妃)께 고하되,
 
“국은이 망극하여 벼슬이 대사마 대장군 대원수에 이르렀사오니 몸이 맟도록 국은을 만분지일이나 갚을까 하옵나니 모친은 소자에 출전(出戰)함을 염려치 마시고, 기체(氣體) 안강(安康)하옵소서.”
 
인하여 하직하니 왕비 눈물을 흘려 왈,
 
“인신(人臣)이 되어 난세(亂世)에 대병(大兵)을 거느려 국은을 갚음이 신자에 떳떳한 일이요, 또 국가를 돌아보는 자는 집을 유련(留連)치 아니한다 하니, 급히 도적을 평정하고대공을 세워 이름이 사해에 진동하고 얼굴을기린각(麒麟閣)에 그림이 남아에 사업이니 노모를 유련치 말고 수이 성공함을 바라노라.”

하니, 원수가 이에 모친에 하직하고 물러나와류부인을 향하여 왈,
 
“그대 등은 모비(母妃)를 지성으로 받들어 복(僕)의 돌아옴을 기다리라.”
 
하고 또 조부인에게 왈,
 
“류씨는 고단한 사람이니 부디 불쌍히 여기며이미 태기 있은 지 칠 삭이니, 만일 생산(生産)하거든 좋이 보호하소서.”
 
하고 또 류부인을 향하여 왈,
 
“아무쪼록 가중이 화평하고 무사함을 바라노라.”
 
두 부인이 대왈,
 
“가중사(家中事)는 염려치 마르시고 대공을 이루어 수이 돌아오심을 바라나이다.”
 
하며 보니 류부인은 근심하는 빛이 있고, 조부인은 기뻐하는 빛이 있거늘, 고이 여겨 조부인에게 왈,
 
“가부(家夫)를 만리 원정에 이별하니, 응당수색(愁色)이 있을 것이어늘 부인은 어찌 희색이 있느뇨?”
 
조부인 왈,
 
“이 어찌된 말씀이니까. 상공이 대원수가 직임(職任)을 당하시니, 신자에 당연한 직분이요, 둘째는 십만 대병을 거느려 오랑캐를 정벌하시니 대장부에 쾌사(快事)이요, 셋째는 무지한 도적을 한번 북 쳐 파하매 위엄이 천하에진동하고 밋 대공을 세우고 승전고를 울려 반사(班師)하매, 위로 천자가 예대(禮待)하시고, 아래로 만조 공경(公卿)이 흠앙(欽仰)하며 영명(榮名)이 천추(千秋)에 전하고 얼굴이 기린각에 오르리니, 상공이 영화를 띠어 환가(還家)하시매 위로는 존고(尊姑)에 흔희(欣喜)하심과 아래로 첩 등의 평생이 영화로움을 사부(賜賻)하여 웃음을 머금어 반가이 맞으리니, 이를 생각하매 자연 화기(和氣) 동함이니이다.”
 
언필에 성음(聲音)이 옥을 마아는 듯하고 얼굴이 순화(純化)하여 장부의 회포를 눅이는지라.
 
승상이 다시 할 말이 없어 모친께 하직하고두 부인을 이별한 후 교장(敎場)에 나와 삼군을 조련하여 행군할새, 천자가 난가(鸞駕)를 동하사 문외(門外)에 나와 원수를 전송하시니원수가 용탑(龍榻) 하에 하직하니, 상이 어주(御酒)를 권하시고 손을 잡으사 왈,
 
“경은 충성을 다하여 흉격(胸膈)을 파하고대공을 세워 짐의 근심을 덜라.”
 
하시고 환궁(還宮)하시다. 원수 이에 방포(放砲) 삼성(三聲)에 행군함을 재촉하니, 기치(旗幟) 검극(劍戟)이 백 리에 뻗쳤더라.
 
 
차시, 정렬부인이 충렬부인을 해하고자 하여한 계교를 생각하고, 시비 금련을 불러 귀에 대어 왈,
 
“너를 수족(手足)같이 믿나니 나의 가르치는대로 시행하라.”
 
금련이 대왈,
 
“부인의 분부하심을 소비(小婢) 어찌 집심(執心)치 않으리이까?”
 
부인 왈,
 
“승상이 류부인을 각별 사랑하는 중, 겸하여류씨 잉태 만삭(滿朔)하였고, 나는 상공의 조강(糟糠)이나 대접함이 소홀하고, 생산(生産)의길이 망연(茫然)하니 류녀가 만일 생남(生男)하면 그 총애 백 배나 더할 것이오, 나의 전정(前情)은 아주 물것이 없으리니 이를 생각하면통분함이 각골(刻骨)한지라. 여차여차하여 미리소저를 행사(行事)하면 나의 평생이 영화로우리니, 네 만일 성사(成事)하면 천금으로 상을주고 일생을 편케 하리라.”
 
금련이 응낙하고 물러 나오더라.
 
 
차시 조부인이 류부인을 청하여 왈,
 
“오늘 일기 화창하오니 후원에 나아가 춘경(春景)을 완상하여 울울한 마음을 위로하고자하오니 부인의 존의(尊意) 어떠하시니까?”
 
류부인이 좋음을 답하고 후원에 이르니, 조부인이 마침 신기(身氣) 불평(不平)하시므로 도로 내려가셨다 하거늘, 류부인이 그 꾀를 모르고 즉시 내려가 보니 조부인이 금구(衾具)를높이 덮고 누웠거늘, 류부인이 곁에 나아가 문왈,
 
“부인은 어디를 그리 불평하시뇨?”
 
조부인이 더욱 앓는 소리를 엄엄(奄奄)히하여 인사를 모르는 체 하거늘, 류씨 일변 놀라고 민망하여 급히 왕비께 고하고 일변 약을 달여 권하니, 차시 밤이 깊었고 인적이 고요하더라.
 
조씨 약을 마신 후 목 안의 소리로 가로되,
 
“나의 병이 나은 듯하니 부인은 침소로 가 편히 쉬소서. 첩의 병은 날이 오래면 자연 낳으리다.”
 
류부인 왈,
 
“부인의 병이 저렇듯 위중하시니 어찌 가 자리이까.”
 
하고 가지 아니하니 조부인이 재삼 권하여왈,
 
“아까 약을 먹은 후 지금은 낳은 듯하오니 염려 마르시고 돌아가소서.”
 
하거늘, 류부인이 마지 못하여 침소로 돌아와누웠더니, 차시 금련이 류부인이 돌아오기 전에남복(男服)을 입고 류부인 침소에 들어가 침병(枕屛) 뒤에 숨었는지라.
 
조부인이 왕비 서사촌(壻四寸) 오라비 성복록을 청하여 금은을 많이 주고 계교를 가르쳐이리이리 하라 하니, 성복록은 욕심이 많은 자이라.
 
밤이 깊은 후 왕비 침소에 들어가 왕비께 고하되,

“정렬부인에 병이 중하매 소저가 저의 의약을다스리며 보오니, 충렬부인이 구병(救病)하는체 하옵더니, 밤이 깊지 못하여 몸이 곤뇌(困惱)하다 하옵고 시비를 물리치고 가오매, 가장 괴이하옵기로 뒤를 따라 살피온즉 모양과의포(衣布) 이러이러한 남자가 한가지로 침소로 들어가압더니 등촉을 물리치고 희락지성(喜樂之聲)이 낭자(狼藉)하오니 이런 변이 어디 있으리이까.”
 
하니, 왕비 이르되,
 
“충렬부인은 이러할 이 만무하니 네 잘못 보았도다.”
 
하고, 꾸짖으니 복록이 할 말이 없어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고하되,
 
“아까 잘못 보았다 꾸짖으시기로 다시 가 보오니 분명한 남자이라. 어떠한 놈과 동침하여희락이 낭자하오니 내 말을 믿지 아니하시거든친히 가 보옵소서.”
 
왕비 왈,
 
“네 분명히 보았느냐?”
 
복록이 다시 고왈,
 
“아무리 우매(愚昧)하오나 어찌 허언(虛言)을 하리이까. 지금에 수작(酬酌)이 난만(爛漫)하오니 한가지로 가시면 자연 알으시리이다.”
 
왕비 묵언(默言) 양구(良久)에 시비를 거느리고 류부인 침소에 이르니, 밤이 정히 삼경(三更)이라.
 
류부인이 잠이 들었더니 왕비 불을 밝히고류부인 침소에 들어가니, 과연 어떤 놈이 뛰어내달아 복록을 차 버리고 후원으로 달아나거늘, 왕비 대경하여 인사를 차리지 못하다가 노기(怒氣) 대발(大發)하여 시비를 호령하여 잡아끓리라 하시니, 시비 달려들어 류부인을 잡아갈새,

차시 류부인이 잠결에 놀라 깨어나니 시비달려들어 잡아 계하(階下)에 꿇리는지라. 류부인이 정신이 삭막하더니, 왕비 여성(厲聲)왈,
 
“너는 일국 정승에 부인으로 사람이 감히 우러러보지도 못하거늘, 네 무엇이 부족하여 여차간음지사(姦淫之事)를 행하여 왕공(王公)의집을 망하게 하니, 네 죄는 친히 본 바이라 발명(發明)치 못할 것이니, 열 번 죽어도 아깝지아니하도다.”
 
하니, 류씨 겨우 인사를 차려 왈,
 
“첩이 죄를 알지 못하오니, 죄나 알아지이다.”
 
왕비 더욱 대로 왈,
 
“어찌 죄를 모르노라 하느뇨. 천하에 살리지못할 것은 음녀(淫女)로다.”
 
하고 복록을 호령하여 큰 칼을 씌워 내옥(內獄)에 엄히 가두고 안으로 들어가니 류씨 하릴없어 옥중에 들어가 가슴을 두드리며, 시비금섬을 불러 죄명을 물어 알고 진정하여 이르되,
 
“이러하면 나의 죄를 어찌 벗어날꼬. 다만 승상에 끼친 바 혈육(血肉)이 세상에 나지 못하고 죽으면 그것이 유한(遺恨)이로다.”
 
하고 방성대곡하며 수건을 내어 결항(結項)하려 하더니, 다시 생각하되,
 
‘내 이제 죽으면 나의 무죄함을 뉘 알리오. 아무쪼록 세상에 부지(扶支)하여 누명을 신설(伸雪)하고 죽으리라.'
 
하고 다만 호곡(號哭)하다가 기절하니, 금섬이 뫼셨다가 놀라 붙들어 급히 구호하니, 이윽고 회생하거늘, 금섬이 위로 왈,
 
“부인이 이제 죽사오면 더러운 악명(惡名)을 면치 못할 것이오니, 아직 일을 보아가며 사생(死生)을 결단하옵소서.”

부인이 이르되,
 
“네 말이 가장 옳으나 불측한 말을 듣고 어찌일시(一時)를 세상에 처하리오.”
 
하고 다시 자결하려 하거늘, 금섬이 만단개유(萬端改諭)하니, 부인이 침음(沈吟)하다가왈,
 
“네 비록 천비(賤婢)나 나의 무죄함을 불쌍히여겨 이렇듯 위로하니 금세에 드문 중비(重婢)로다. 연(然)이나 나를 위하여 양책(良策)을 생각하여 나에 무죄함을 변백(辨白)함을 바라노라.”

금섬이 하직하고 제 집으로 돌아가더라.
 

 

2
차설(且說) 금섬이 제 집에 돌아와 제 부모에게 부인의 하던 수말을 낱낱이 전하니, 제 부모가 참혹히 여겨 가로되,
 
3
“너는 아무쪼록 계교 베풀어 부인을 살려내라.”
 
4
금섬 왈,
 
5
“류부인이 명일(明日)에는 형장(刑杖) 아래곤욕을 당하시리니, 다만 구하여 낼 계교 있사오되, 행장(行裝)이 없음이 한이로다.”
 
6
그 어미 이르되,
 
7
“행장이 있으면 네 무슨 수단으로 구하고자하는다?”
 
8
금섬이 대왈,
 
9
“오라비가 일일의 오백 리씩 다닌다 하오니행장 곧 있사오면 부인의 서간(書簡)을 가지고승상 노야(老爺) 진중(陣中)에 가오면 능히살릴 도리 있나이다.”
 
10
그 부모가 가로되,
 
11
“행장이 무엇이 어려우리오. 네 말대로 행장을 차려 줄 것이니 아무쪼록 충렬부인이 무사케 하라.”
 
12
금섬이 대희하여 즉시 옥중에 들어가 부인을보고, 제 부모와 문답하던 말을 고하고 서찰(書札)을 청하니, 부인 왈,
 
13
“네 오라비 나를 살리고자 하니, 차은(此恩)을 어찌 다 갚으리오.”
 
14
언파(言罷)에 눈물을 흘리며 서간을 닦아 주거늘, 금섬이 받아가지고 나와 제 오라비 호철을 불러 편지를 주며,
 
15
“사세(事勢) 급박(急迫)하니 너는 주야배도(晝夜倍道)하여 다녀오라. 황성에서 서평관(西平館)이 삼천여 리니 부디 조심하여 다녀오라.”
 
16
하고 옥중에 들어가 호철 보낸 사연을 고하고, 왕비 침전에 근시(近侍)하는 시비 월매를 불러 왈,
 
17
“충렬부인의 참혹한 일을 너도 알려니와 우리등이 아무쪼록 살려냄이 어떠하뇨?”
 
18
월매 왈,
 
19
“어찌하면 살려내리오.”
 
20
금섬이 대왈,
 
21
“명일 아침이 되면 왕비 상소하여 죽일 것이니, 우리는 관계치 아니하나 충렬부인이 무죄히죽으리니 불쌍하시고, 또한 복중에 승상에 혈육이 아깝도다.”
 
22
인하여 충렬부인의 전어(傳語)를 설파(說破)하고 왈,
 
23
“이제 옥문 열쇠가 왕비 계신 침전에 있다 하니, 들어가 도적하여 줌을 바라노라.”
 
24
월매 응낙하고 가더니 이윽고 열쇠를 가져왔거늘, 금섬 왈,
 
25
“너는 여차여차 하라.”
 
26
월매 눈물을 흘려 왈,
 
27
“나는 너 가르친 대로 하려니와, 네 부모를어찌하고 몸을 버리려 하는다?”
 
28
금섬이 탄왈(嘆曰),
 
29
“우리 부모는 나에 동생이 여럿이니 설마 부모의 경상(景狀)이 편하지 못하리오. 사람이 세상에 나매 장부는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나라를 섬기다가 난세(亂世)를 당하면 충성을다하여 죽기를 무릅써 임군을 도움이 직분이요, 노주간(奴主間)은 상전이 급한 일이 있으면몸이 마치도록 섬기다가 죽는 것이 당연하니, 내 이리하는 것은 나에 직분을 다함이니 너는말리지 말라. 부디 내 말대로 시행하여 부인을잘 보호하라.”
 
30
하고 옥문을 열고 월매와 한가지로 들어가고 왈,
 
31
“부인은 빨리 나오소서.”
 
32
부인 왈,
 
33
“너는 어디로 가자 하는다.”
 
34
금섬이 대왈,
 
35
“일이 급박하니 바삐 나옵소서.”
 
36
부인이 비례(非禮)을 알되, 애매히 죽음이원통한지라. 이에 나올새 월매는 부인을 뫼시고나오되, 금섬은 도로 옥으로 들어가니 부인이괴이 여기나 묻지 못하고 월매를 따라 한 곳에이르니, 월매 부인을 인도하여 지함(地陷) 속에 감추고 왈,
 
37
“이목(耳目)이 번거(飜擧)하오니 말씀을 마르시고 종말(終末)을 기다리소서.”
 
38
하더라. 어시(於時)에 금섬이 옥중에 들어가 백포(白布) 수건으로 목을 매여 자는 듯이 죽었는지라. 월매 이를 보고 마음에 떨려 놀랍고 정신이 비월(飛越)하여 슬픔을 머금고 가슴을 두드리며 눈물을 흘리다가 하릴없어 얼굴을 두루깎아 혈흔(血痕)을 내며 남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고, 혈서를 쓴 것을 옷고름에 채우고 문을전같이 잠그고 열쇠는 전에 두었던 곳에 두었더니,
 
39
차시, 왕비 조부인을 불러 상소를 지어놓고노복(奴僕)을 불러 옥문을 열고 류부인을 잡아내라 하니, 옥졸이 명을 듣고 들어가 보니 부인이 이미 백깁으로 목을 매여 자처(自處)하였으니, 혈흔이 낭자하여 보기에 참혹하거늘 불승(不勝)황겁(惶怯)하여 자세히 보니 옷고름에혈서 쓴 종이를 매었거늘 황망히 끌러 가지고나와 왕비께 부인의 자결하심을 고하고 혈서를드리니, 왕비 대경하여 혈서를 떼어보니 그 글에 하였으되,
 
40
“박명 인생 류씨는 슬픈 소회(所懷)를 천지신명(天地神明)께 고하나이다. 슬프다. 부모에 생육구로지은(生育劬勞之恩)이 바다가 얕고 산이 가벼운지라. 십오 세에 승상을 만나 악명은무슨 일고.
 
41
죽은 지 삼 년만에 원(怨)이 깊었더니 다시회생하기는 황상의 넓으신 덕택과 왕비에 성덕과 승상에 활달 대도(大道)하신 은덕으로 일월성신(日月星辰)과 후토신령(后土神靈)에게발원(發願)하여 다시 인연을 맺었더니 갈수록팔자가 무상하여 원통한 악명을 무릅써 죽으니하늘이 정하신 수(壽)를 도망하기 어렵도다.
 
42
첩은 죄악이 심중하여 죽거니와 유모 부처는무슨 죄로 가두었는고. 슬프다. 지하의 무슨 면목으로 부모께 뵈오리오. 다만 복중(腹中)의끼친 바 승상의 혈육이 어미 죄로 세상의 나지못하고 죽으니 한 조각 한이 깊도다.”
 
43
하였더라.
 
44
왕비 보기를 마치매 도리어 참혹하여 염습(斂襲)을 극진히 하여 안장하고, 유모와 시비를다 놓으니 유모 부부가 부인을 생각하고 천지를 부르짖어 통곡하니 그 참혹함을 이로 측량치 못할러라.
 
45
이적에 금련이 옥졸의 말을 들으니 서로 일러 왈,
 
46
“충렬부인이 미색(美色)으로 천하의 유명하다하더니 이번의 본즉 수족도 곱지 아니하고 잉태 칠 삭이라 하되 배부르지 아니하니 괴이하다.”
 
47
하거늘, 금련이 이 말을 듣고 의심하여 조씨께 이 연유를 고하니, 조녀가 이 말을 듣고 왕비께 여쭈오니 왕비 듣고 괴이 여겨 그 무덤을 파고 보니 과연 류부인이 아니오, 시비 금섬일시 분명한지라.
 
48
왕비 대로하여 옥졸을 잡아드려 국문(鞫問)하니 옥졸이 무죄함을 발명하거늘 왕비 여성(厲聲) 왈,
 
49
“류부인이 옥중의 갇혔을 제 시비 등의 왕래함을 여등(汝等) 이 알 것이니, 은휘(隱諱)치 말고 바로 아뢰라. 만일 태만(怠慢)함이 있으면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50
옥졸이 다시 고하되,
 
51
“금섬과 월매 두 시비만 왕래하였고,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였나이다.”
 
52
왕비 청파(聽罷)에 대로하여 금섬의 부모를부르고 월매를 잡아드리라 하여 문왈,
 
53
“여등이 류부인을 빼어다가 어디 두고 또 처음에 흉악한 놈을 통간(通姦)하였으니 여등은알 지라. 그놈이 어떠한 놈이며 류부인은 어디로 보내었느뇨? 바로 아뢰라.”
 
54
하고 엄형(嚴刑) 추문(推問)하니, 금섬의 부모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 다만 고왈,
 
55
“장하(杖下)에 죽사와도 알지 못하오니 죽을지라.”
 
56
하거늘, 왕비 더욱 노하여 국문하되 월매 혀를 깨물어 죽기를 사양하지 아니하니, 왕비 노기(怒氣) 충천(衝天)하여 금섬의 부모를 옥에가두고 월매는 다시 형벌을 갖추어 불로 지지되 승복(承服)하지 아니하니 하릴없어 도로옥에 가두더라.
 
57
이적에 월매 류부인을 지함 속에 넣고 밥을수건에 싸다가 겨우 연명(延命)하더니 하루는기운이 시진(澌盡)하여 죽기에 임하였더니, 문득 해복(解腹)하니 여러 날 굶은 산모가 어찌 살기를 바라리오. 정신을 수습하여 생아(生兒)를 보니 이 곧 남자이거늘 일희일비(一喜一悲)하여 자탄(自嘆) 왈,
 
58
“박명한 죄로 금섬이 죽고, 월매 또한 죽기에이르렀으니 어찌 참혹하지 않으리오.”
 
59
하여 아이를 안고 이르되,
 
60
“네가 살면 내 원수를 갚으려니와 이 지함 속에 들었으니 뉘라서 살리리오.”
 
61
하며, 목이 메어 탄식하니 그 부모의 참혹함과 슬픔을 이로 측량치 못할러라. 차시 월매 독한 형벌을 당하고 옥중에 갇히었으나 저의 괴로움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부인의 주림을 잔잉하여 탄식하기를 마지아니하더라.
 
 
62
차시 금섬의 오라비 류부인의 글월을 가지고주야배도하여 서평관의 다다라 진 밖에 엎드려 대원수 노야 본댁에서 서찰을 가지고 왔음을 고하니,
 
63
차시 원수가 한 번 북 쳐 서융을 항복받고백성을 진무(鎭撫)하며 대연(大宴)을 배설(排設)하여 삼군(三軍)으로 즐길새, 장졸(將卒)이 희열(喜悅)하여 승전고를 울리며 즐기더라.
 
64
일일은 원수가 일몽(一夢)을 얻으니 충렬부인이 큰 칼을 쓰고 장하에 들어와 이르되,
 
65
“나는 팔자가 기박(奇薄)하여 정렬의 음해(陰害)를 입어 죽기에 임하였으되, 승상은 태연히 여기시니 인정이 아니로소이다.”
 
66
하거늘, 원수가 다시 묻고자 하더니 문득 진중에 북소리 자주 동하매 놀라 깨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라. 놀라고 몸이 떨리어 일어나니군사가 편지를 드리거늘 개탁(開坼)하여 보니 류부인 서간이라. 그 글에 하였으되,
 
67
“박명한 죄첩(罪妾)은 두 번 절하고 상공휘하(麾下)에 올리나이다. 첩의 죄 심중하여 세상을 버린 지 삼 년 만에 장군의 은덕을 입사와 살아났사오니 환생지덕(還生之德)을 만분지일이나 갚을까 바랐더니, 여액(餘厄)이 미진(未盡)하여 지금 궁옥(宮獄)에 들어 명재조석(命在朝夕)이오니, 박명지인(薄命之人)이죽기는 섧지 아니하되, 복중에 끼친 바 혈육이 첩의 죄로 세상에 나지 못하고 한가지 죽사오니 지하에 돌아가나조상의 뵈올 낯이 없삽고, 또 장군을 만리 전장에 보내고 성공하여 수이 돌아옴을 기다리옵더니 장군을 다시 뵈옵지 못하고 죽사오니 눈을감지 못할지라. 복원 상공은 만수무강하시다가지하로 오시면 뵈올까 하나이다.”
 
68
하였더라.
 
69
원수가 보기를 다 못하여 대경하여 급히 호철을 불러 물으니, 호철에 대답이 분명치 못하니 대강 알지라. 급히 중군(中軍)에 전령하되,
 
70
“본부(本部)의 급한 일이 있어 시각이 바쁘니 중군 대소사를 그대에게 맡기나니 나의 영을 어기지 말고 행군하여 뒤를 좇으라.”
 
71
부원수(副元帥)가 청령(聽令)하거늘, 원수이에 청총마(靑驄馬)를 채쳐 필마단기(匹馬單騎)로 삼 일 만에 황성에 득달하더라.
 
72
차시 조씨 다시 형구(刑具)를 베풀고 월매를 잡아내어 형틀에 올려 매고 엄히 치죄(治罪)하며 류부인에 간 곳을 물으되, 종시 승복지 아니하고 죽기를 재촉하는지라.
 
73
조씨 치다 못하여 그치고 차후에 혹 탄로(綻露)할까 겁하여 가만히 수건으로 목을 매여 거의 죽게 되었더니, 뜻밖에 승상이 필마로 들어와 말에서 내려 정히 들어오더니 문득 보니 한여자가 백목(白木)으로 목을 매었거늘 놀라자세히 보니 이 곧 월매라.
 
74
바삐 끌러 놓고 살펴보니 몸에 유혈(流血)이낭자하여 정신을 모르는지라. 즉시 약을 흘려넣으니 이윽한 후 정신을 차려 눈물을 흘리며인사를 차리지 못하니 승상이 불쌍히 여겨 이에 약물로 구호하매 쾌히 정신을 진정하거늘, 원수가 연고를 자세히 물으니,
 
75
월매 이에 금섬 죽은 일과 류부인이 피화(被禍)하여 지함 속에 계심을 자세히 고하니, 승상이 분해하여 급히 월매를 앞세우고 굴헝에가 보니, 류부인이 월매의 양식 자뢰(資賴)함을 입어 겨우 목숨을 보전하다가 및 해복하매복중이 허한 중, 월매 옥중에 곤(困)하매 어찌 양식을 이으리오.
 
76
여러 날을 절곡(絶穀)하매 기운이 쇠진(衰盡)하고 지기(地氣) 일신(一身)에 사무치니몸이 부어 얼굴이 변형하여 능히 알아볼 수 없는지라. 그 가련함을 어찌 다 측량하리오.
 
77
아이와 부인을 월매로 보호하라 하고 내당에들어가 왕비께 뵈오니, 왕비 크게 반겨 승상의손을 잡고 왈,
 
78
“만리 전장에 가 대공을 세우고 무사히 돌아오니 노모의 마음이 즐겁기 측량 없도다. 그러나 네 출전(出戰) 후 가내의 불측한 일이 있으니 그 통한한 말을 어찌 다 형언하리오.”
 
79
하고 충렬부인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말하니 승상이 고왈,
 
80
“모친은 마음을 진정하옵소서. 처음에 충렬의방에 간부가 있음을 어찌 알았으리오?”
 
81
“노모의 서사촌 복록이 와서 이리이리 하기로알았노라.”
 
82
승샹이 대로하여 복록을 찾으니 복록이 간계발각할까 두려워 벌써 도주하였거늘, 승상이 외당에 나와 형구를 배설하고 옥졸을 잡아드려 국문하되,
 
83
“여등이 옥중의 죽은 시신이 충렬부인이 아닌줄 어찌 알았으며, 그 말을 누구에게 하였는다? 은휘치 말고 바른대로 아뢰라.”
 
84
하는 소리 우레 같으니, 옥졸들이 황겁하여 고왈,
 
85
“소인 등이 어찌 알았으리까 마는 염습할 때에 보오니 얼골과 손길이 곱지 못하여 부인과다름을 소인 등이 의심하여 서로 말할 적에, 정렬부인 시비 금련이 마침 지나다가 듣고 묻기에 소인이 안면에 구애(拘礙)하여 말하고, 행여 누설치 말라 당부하올 뿐이요, 후일은 알지못하나이다.”
 
86
승상이 청파의 대로하여 칼을 빼어 서안(書案)을 치며 좌우를 꾸짖어 금련을 바삐 잡아드리라 호령하니, 노복 등이 황황하여 금련을 족불리지(足不履地)하여 계하에 꿇리니 승상이 고성(高聲) 문왈,
 
87
“너는 옥졸의 말을 듣고 뉘에게 말한다?”
 
88
금련이 혼불부체(魂不附體)하여 주왈,
 
89
“정렬부인이 금은을 많이 주며 계교를 가르쳐주었나이다.”
 
90
남복을 입고 충렬부인 침소에 들어가 병풍뒤에 숨었던 일과, 정렬부인이 거짓 병든 체하오매 충렬부인이 놀라 문병하고 탕약을 갈아드려 밤이 깊도록 구병(救病)하시니 정렬부인이 병이 잠깐 낫다 하고 충렬부인에게 그만 침소로 가소서 하니 충렬부인이 마지 못하여 침실로 돌아가신 후 조부인이 성복록을 청하여금은을 주고 왕비 침전에 두세 번 참소하던 말을 자초지종을 낱낱이 고하니,
 
91
왕비, 앙천(仰天) 탄식하고 통곡하여 왈,
 
92
“내 불명하여 악녀의 꾀에 빠져 애매한 충렬을 죽일 뻔하였으니 무슨 낯으로 현부(賢婦)를 대면하리오.”
 
93
하고 슬퍼하니, 승상이 고왈,
 
94
“이는 모친의 허물이 아니시고 소자의 제가(齊家)치 못한 죄오니, 복망(伏望) 모친은심려치 마소서.”
 
95
왕비 누수(漏水)를 거두고 침석에 누워 일어나지 아니하니 승상이 재삼 위로하고, 즉시 조씨를 잡아드려 계하에 꿇리고 대질(大叱) 왈,
 
96
“네 죄는 하늘 아래 서지 못할 죄니, 입으로다 옮기지 못할지라. 죽기를 어찌 일시나 요대(饒貸)하리오마는 사사로이 죽이지 못하리니천자께 주달(奏達)하고 죽이리라.”
 
97
조씨 애달파 가로되,
 
98
“첩의 죄상이 이미 탄로하였으니 상공이 임의(任意)대로 하소서.”
 
99
승상이 노하여 큰 칼 씌어 궁옥에 가둔 후상소를 지어 천정(天庭)에 올리니 그 글에 하였으되,
 
100
“승상 정을선은 돈수백배(頓首百拜)하옵고성상(聖上) 탑하(榻下)에 올리나이다. 신이황명을 받자와 한번 북 쳐 서융을 항복 받고백성을 진무하온 후 회군하려 하옵더니, 신의 집 급한 소식을 듣고 바삐 올라와 보온즉 여차여차한 가변(家變)이 있사오니 어찌 부끄럽지아니리이까.
 
101
차사(此事)가 비록 신의 집 일이오나 스스로처단치 못하여 이 연유를 자세히 상달(上達)하옵나니, 원(願) 폐하는 극형으로 국법을 쓰사죄자(罪者)를 밝히 다스리시고, 신의 집 시비금섬이 상전을 위하여 죽었사오니, 그 원혼을표장(表章)하심을 바라나이다.”
 
102
하였고, 그 끝에 류씨 지함에 들어 해복하고, 월매의 충의(忠義)를 힘입어 연명(延命) 보전하였음을 세세(細細)히 주달하였더라.
 
103
상이 남파에 대경하사 가라사대,
 
104
“승상 정을선이 국가의 대공을 여러 번 세워짐의 주석지신(柱石之臣)이라. 가내에 이런해괴한 변이 있으니 어찌 한심치 않으리오.”
 
105
이에 전지(傳旨)하사 왈,
 
106
“정렬과 금련의 죄상이 전고(前古)에 짝이없으니 즉각내에 참(斬)하라.”
 
107
하시니 제신(諸臣)이 주왈,
 
108
“차녀(此女)의 죄 중하오나 조왕의 딸이요, 승상의 부인이니 참형을 쓰심이 너무 과하오니, 다시 전교하사 집에서 사사(賜死)하심이 옳을까 하나이다.”
 
109
천자가 옳게 여기사 비답(批答)을 내리시되,
 
110
“짐이 덕이 부족하여 경사(慶事)는 없고 변고가 일어나니 참괴(慙愧)하도다. 비록 그러하나 정렬은 일국 승상에 부인이니 특별히 약을내려 집에서 죽게 하나니 경은 그리 알고 처사(處事)하라. 금섬과 월매는 고금에 없는 충비(忠婢)니 충렬문을 세워 후세에 이름이 나타나 하라.”
 
111
하시니 ,승상이 사은 퇴궐하여 즉시 조씨를수죄(受罪)하여 사약(死藥)한 후, 금련은 머리를 베이고 그 남은 죄인은 경중(輕重)을 분간하여 다스리고, 금섬은 다시 관곽(棺槨)을갖추어 예로 장(葬)하고, 제 부모는 속량(贖良)하여 의식을 후히 주어 살리고 충렬문을세워 주고, 사시(四時)로 향화(香火)를 받들게하고, 월매는 금섬과 같이하여 충렬부인 집 안에 일좌(一座) 대가(大家)를 세우고 노비 전답을 후히 주어 일생을 편하게 제도(提導)하더라.
 
 
112
차시, 유모 부부가 실성통곡하며 집으로 다니다가 승상이 올라와 부인의 원통한 누명을 신설(伸雪)하였단 말을 듣고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춤을 추며 들어와 부인을 붙들고 통곡 왈,
 
113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다시 부인을 차생(此生)에 만날 줄을 뜻하였으리오.”
 
114
부인이 유모를 붙들고 목이 메여 말을 못하다가 가로되,
 
115
“어미는 그 사이 어디로 갔다가 이제야 오뇨?나는 성상의 일월 같으신 성덕(盛德)과 승상의하해지덕(河海之德)을 입어 사액(死厄)을 면하였으니, 이제 죽으나 무한이로다.”
 
116
하며 통곡하니, 유모가 위로 왈,
 
117
“이제는 부인에 액운(厄運)이 다 진하고 양춘(陽春)이 돌아왔으니 석사(昔事)를 생각하지 마소서.”
 
118
류부인이 칭사(稱辭)하고, 즉시 왕비께 들어가 청죄(聽罪)하니, 비참하여 난두(欄頭)에내려 부인의 손을 잡아 왈,
 
119
“현부가 무슨 죄를 청하느뇨? 내 불명하여 현부를 애매히 죽일 뻔하였으니 나의 부끄러움을땅을 파고 들고자 하며, 아무리 뉘우친들 무엇이 유익하리오.”
 
120
류부인이 고왈,
 
121
“소첩이 전생의 죄 중하여 여러 번 괴이한 악명을 당하오니, 차(此)는 첩의 불민(不憫)함이라. 어찌 존고(尊姑)의 명하심이리까. 연(然)이나 승상의 명달(明達)하므로 첩의 악명을 설백(雪白)하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리까.”
 
122
인하여 옥배(玉杯)에 향온(香醞)을 가득 부어 꿇어드리고 강녕(康寧)의 수(壽)를 축(祝)하니, 승상이 대희하여 크게 잔치하고 아자(兒子)에 이름을 귀동이라 하여 못내 사랑하더라.
 
123
승상이 치죄(治罪)하기를 마치고 차의(此意)를 황상께 주달하니, 상이 친히 승상에 손을 잡으시고 왈,
 
124
“짐이 경(卿)을 만리 전진(前陣)에 보내고침식(寢食)이 불안하더니 경이 한번 싸워 큰공을 세우고 무사히 돌아오니 국가의 만행(萬幸)이라. 경의 공을 무엇으로 갚으리오.”
 
125
하시며 옥배에 향온을 부어 권하시고, 승상의벼슬을 돋우어 영승상(領丞相) 겸 천하병마도총독(天下兵馬都總督)을 하이시고 병권(兵權)을 맡기시니, 승상이 굳이 사양하되 상이 종(終) 불윤(不允)하시거늘, 승상이 하릴없어 집에 돌아와 왕비께 문안하고 물러 류부인 침소에 이르니, 부인이 일어나 맞아 좌정 후 승상을향하여 왈,
 
126
“첩이 고할 말씀이 있으나 상공 처분이 어떠하실는지 감히 발설치 못하나이다.”
 
127
승상이 문왈,
 
128
“무슨 말씀인지 부부간에 어려움이 있으리오. 듣기를 원하노라.”
 
129
부인이 대왈,
 
130
“다름이 아니오라 월매에 은혜를 갚을 길이없사오매, 승상의 총첩(寵妾)을 삼아 일실지내(一室之內)에 백 년을 같이하면 은혜를 만분지일이나 갚을 듯하오니, 승상은 혜택(惠澤)을 드리오사 시측(侍側)에 두심을 바라나이다.”
 
131
승상이 미소 왈,
 
132
“부인이 어찌 망령된 말을 하느뇨. 결단코 시행치 못하리니 다시 이르지 마소서.”
 
133
부인이 여러 번 간청하거늘, 승상이 마지 못하야 월매로 첩을 삼으니 류부인이 동기(同期)같이 사랑하더라.
 
134
세월이 여류하여 금섬이 소기(小朞)를 당하매 부인이 제물(祭物)을 갖추어 제(祭)하니 제문(祭文)에 가로되,
 
135
“유세차(維歲次) 모년 월 일에 충렬부인 류씨는 일배 청작(淸酌)으로 금섬 낭자에게 올리노라. 그대 나의 잔명(殘命)을 살려내어 승상을 다시 만나 영화로이 지내니 낭자의 은혜와충렬이 아니면 내 어찌 복록(福祿)을 누리리오. 차은(此恩)을 생각하면 차생에 갚을 길이 없으니 지하에 돌아가 갚기를 바라며 후생에 동기되어 금세의 미진한 은혜 갚기를 원하노니, 밝은 정령(精靈)이 있거든 흠향(歆饗)하라.”
 
136
하였더라.
 
137
읽기를 그치매 일장(一場)을 통곡하니 산천초목(山川草木)이 다 슬퍼하더라. 제를 파(罷)하고 돌아와 금섬의 충렬을 새로 생각하며 못내 잊지 못하여 궁옥에 갇혔던 일을 생각하고금섬을 부르며 통곡하니, 승상이 위로하여 비회(悲懷)를 억제하더라.
 
138
이러구러 귀동 공자가 나이 십삼 세 되니 용모가 특출(特出)하고 문필이 기이하니 승상이사랑하여 경계(警戒) 왈,
 
139
“금섬 곧 아니런들 네 어찌 세상에 살아나리오.”
 
140
하고 새로이 생각하더라.
 
 
141
차시 사방이 무사하고 백성이 낙업(樂業)하니 천자가 조서를 내려 인재(人才)를 뽑으실새문무(文武) 과장(科場)을 열으시니, 사방 선비가 구름같이 모일새, 차(此) 귀동이 과거 기별을 듣고 주야 공부하여 만권(萬卷) 시서(詩書)를 무불통지(無不通知)하니 당시 문장이라.
 
142
과일(科日)이 불원(不遠)하매 승상께 들어가기를 고하니, 승상이 허락하고 장중(場中) 제구(諸具)를 차려 주더라.
 
143
귀동이 과장에 들어가 글제를 기다려 시지(試紙)를 펼치고 일필휘지(一筆揮之)하여 선장(先場)에 바쳤더니, 차시 천지 친히 꼬노실새 선장 글을 보시고 크게 칭찬하시며 장원을 제수하시고 피봉(皮封)을 떼이시니,
 
144
영승상 천하병마대도독 정을선의 자 귀동이니, 연(年)이 십삼 세라 하였거늘, 천자가 기특히 여기사 승상과 귀동을 부르시니 승상 부자가 승명(承命) 복지(伏地)하오니, 상이 칭찬하시고 신래(新來)를 무수히 진퇴(進退)하시다가 옥배(玉杯)에 어주를 부어 권하시며 왈,
 
145
“경의 아들이 몇이나 되느뇨?”
 
146
승상이 주왈,
 
147
“미거(未擧)한 자식이 하나로소이다.”
 
148
상이 칭선(稱善)하사 왈,
 
149
“경의 일 자가 타인의 십 자에서 승(勝)하리니, 후일에 반드시 국가 주석지신(柱石之臣)이될지라. 경의 생자(生子)한 공이 어찌 적으리오.”
 
150
하시고, 귀동으로 한림학사를 제수하시니, 승상 부자가 황은을 숙사(肅謝)하고 퇴조(退朝)하여 궐문 밖에 나올새, 장원(壯元)이 금관 옥대(玉帶)에 어사화(御賜花)를 비끼고 청홍개쌍개(靑紅雙蓋)는 앞을 인도하며 하리(下吏) 초종(招鐘)은 전차후응(前次後應)하였으니, 옥골선풍(玉骨仙風)이 활연(豁然) 쇄락(灑落)하여 이청련(李淸蓮)의 문장과 두목지(杜牧之)의 풍채를 겸하였으니, 도로 관광자(觀光者)가 책책(嘖嘖) 칭선(稱善)함을 마지아니하는지라.
 
151
승상이 고거(高車) 사마(駟馬)에 높이 앉아장원을 거느려 완완(緩緩)히 행하여 부중에이르니, 왕비 중문에 나와 한림에 손을 잡고 정당(正堂)에 올라와 귀중함을 이기지 못하더라.
 
152
인하여 대연을 배설하여 즐길새 충렬부인이석사를 생각하고 크게 슬퍼하여 승상에게 고하고, 이에 아자를 데리고 류승상 묘소에 내려가소분(掃墳)하고 제물을 갖추어 치제할새, 부인이 비회를 참지 못하여 일장을 통곡하니, 초목금수가 다 슬퍼하는 듯하더라.
 
 
153
한림이 근동(近洞) 사람을 청하여 삼 일을 잔치하여 즐기고 류씨 부모 산소를 크게 치산(治山)하고 전답을 많이 장만하여 주며, 노복을 가리어 승상의 묘소와 류씨 부모의 산소를 지키어 사시 향화를 지극히 받들게 하니, 상하 노복과 문생(門生) 고구(故舊)가 한림의은덕을 못내 칭송하더라.
 
154
여러 날이 되니 천자가 한림을 잊지 못하사사관(辭官)을 보내어 명초(命招)하시니, 한림이바삐 치행(治行)하여 사관을 따라 황성으로 올라가더라.
 
 
155
차시, 월매 순산(順産) 생남하니, 기골(寄骨)이 범상치 아니하고 영민(英敏) 총혜(聰慧)하여 기질이 비상하니, 승상이 과애(過愛)하여 이 름을 중민이라 하고, 자를 수천이라 하다.
 
156
중민이 자라매 문장 필법(筆法)이 빼어나니승상 부부와 월매의 기중(器重)함이 비할 데없더라.
 
 
157
광음(光陰)이 여류하여 매년에 금섬의 기일을 당하면 부인이 석사를 생각고 때때 슬퍼하더라.
 
158
정한림의 벼슬이 점점 높아 이부상서에 이르고, 차차 충현이 효성이 지극하고 도학(道學)이 고명(高名)하여 벼슬을 원치 아니하고, 예의를 숭상하니 별호를 운림처사라 하고 기이한도법을 숭상하니 세인이 그 지취(志趣) 고상함을 칭찬하더라.
 
159
일일은 왕비 우연히 득병하여 백약이 무효하니 승상 부부 지성으로 약을 구하여 치료하되이미 황천(黃泉)길이 가까우니 어찌 인력으로하리오. 왕비 스스로 이기지 못할 줄 알고 승상과 충렬부인의 손을 잡고 제 손아(孫兒)를 불러 앞에 앉히고 희허(噫噓) 탄식 왈,
 
160
“내 비록 죽으나 충렬과 월매의 숙덕(宿德)으로 가사(家事)를 선치(善治)하리니 문호(門戶)를 창개(創開)할지라. 무슨 근심이 있으리오.”
 
161
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와상(臥床)을 편히하고 누우며, 인하여 졸(卒)하니 시년(時年)이구십 삼 세러라.
 
162
일가(一家)가 망극하여 승상과 충렬이 자주기절하니 한림이 붙들어 관위(寬慰)하여 너무 과상(過傷)하시믈 간(諫)하니 승상과 충렬이비로소 정신을 수습하여 택일하여 선산의 안장하고 세월을 보내더니,
 
163
광음이 신속하여 왕비의 삼상(三喪)을 마치매 승상 부부가 새로이 슬퍼하며 승상이 연치(年齒) 많으매 세월이 오래지 않은 줄 알고 치사(致仕)하려 할 새, 차시 천자가 귀동의 벼슬을 돋우어 우승상을 하이시고, 승상 을선으로위왕(魏王)을 봉(封)하시사 괘관(挂冠) 교지를 내리시더라.
 
 
164
차시, 좌복야(左僕射) 조영이 승상의 아름다움을 듣고 위왕께 청혼함이 간절하매 왕이허락하니 조영이 대희하여 즉시 택일하니 춘삼월 망간이라.
 
165
길기(吉期) 수일이 격(隔)하였으니 위왕과조영이 기뻐하더니, 인하여 길일(吉日)이 다다르매 승상이 길복(吉服)을 입고 위의(威儀)를거느려 조부(趙府)에 이르니, 포진(鋪陳)을정제(整齊)하여 신랑을 맞아 전안청(奠雁)(廳)에 이르매, 신부를 인도하여 교배(交拜)를 마친후, 신랑이 신부에 상교(相交)함을 재촉하여 봉교상마(奉轎上馬)하여 만조(滿朝) 요객(繞客)을 거느리고 위의(威儀)를 휘동(麾動)하여 부중에 돌아와 신부가 폐백(幣帛)을 받들어 구고(舅姑)께 드리고 팔 배 대례(大禮)를 행하니,
 
166
위왕 부부가 대열(大悅)하여 신부 숙소를 정하여 보내고 종일 즐기다가 석양에 파연(罷宴)하매 승상이 부모께 혼정(昏定)을 마친 후 기린촉(麒麟燭)을 밝힌 후 신방에 이르니 신부가일어나 맞아 동서 분좌(分座)하매 승상이 눈을들어 보니 짐짓 절대가인이라.
 
167
마음에 쾌(快)하여 촉(燭)을 물리고 옥수를이끌어 원앙 금니의 나아가 운우지정(雲雨之情)을 이루매 그 정이 비할 데 없더라. 날이밝으매 승상 부부가 일어나 소세(梳洗)하고 부모께 신성(晨星)하니 위왕 부부가 두굿김이측량 없더라.
 
 
168
차시, 충현의 나이 십오 세 되니 신장이 팔척이오 얼굴이 관옥(冠玉) 같으니 위왕 부부가그 숙성함을 두굿겨 널리 구혼하여 추밀사(樞密使) 왕진의 여를 취하여 성례(成禮)하니 왕소저에 아름다움이 조소저의 하등(下等)이 아니러라.
 
169
승상이 부모의 점점 쇠로(衰老)하심을 민망하여 천자께 수 삭 말미를 얻어 부모를 뫼시고 백화정에 포진을 정제하여 즐길새, 천자가상방어선(上方御膳)을 많이 사급(賜給)하시고, 충렬부인에 열절(烈節)을 다시금 표장(表裝)하시니, 승상이 망궐(望闕) 사은하고 여러날 즐기다가 파연하고, 궐하에 사은하오니 상이반기사 손을 잡으시고 위유(慰諭)
 
170
“경의 부왕은 국가에 큰 공이 있어 나라에 주석지신이 되었더니, 경이 또 짐을 도와 고굉(股肱)이 되니 어찌 기쁘지 않으리오.”
 
171
하시고, 어주 삼 배(盃)와 자금표(紫錦縹)일 령을 사급하시니 승상이 천은을 숙사하고, 부중에 돌아와 부모께 뵈옵고 천은이 효성하심을 고하니, 위왕이 천은을 감격하여 자손에게국은을 대대로 잊지 맒을 부탁하더라.
 
 
172
이러구로 수년이 지나매 위왕과 충렬부인이홀연 득병하여 백약이 무효하니 스스로 이기지못할 줄 알고 승상 형제를 불러 왈,
 
173
“나의 병이 골수에 들었으니 반드시 세상이오래지 아닐지라. 나의 죽은 후라도 천자를 어질게 섬겨 도우라.”
 
174
하고 또 처사에게 왈,
 
175
“나의 죽은 후에 너에 형제 화목하여 가사를선치(善治)하라.”
 
176
하고 새 옷을 갈아입고 상에 누우며, 인하여초왕과 부인이 일시에 졸하니 승상 형제가 천지가 무너짐을 당하여 일성(一聲) 호곡(號哭)에 자주 혼절(昏絶)하니 친척 고구(故舊)와 승상 형제를 위로하여 슬픔을 진정하매 인하여예를 갖추어 선릉(先陵)에 장(葬)하더라.
 
177
세월이 여류하여 얼풋이 이에 왕의 삼상(三喪)이 지냄에 천자가 새로이 치제(致祭)하사슬퍼함을 마지않으시니, 승상 형제와 일문(一門) 상회(常會) 천은이 호탕(浩蕩)하심을 각골(刻骨)하더라.
 
178
차후(此後) 승상은 연(連)하여 사자 이녀를생(生)하고, 처사는 삼자를 생하니, 자손이 연(連)하여 계계승승(繼繼承承)하여 승상 형제에 부귀 복록이 무흠(無欠)하더라.
 
179
이 말이 기이하기로 대강 기록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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